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소비자가전 전시회(CES)는 우리에게 산업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을 진중히 던져준다. 우리의 준비상태를 살펴보고 ‘세계는 저만치 달려가는데 우리는 뭐하나’를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속에 서 있는 연구개발자이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자격으로 CES 2020이 열린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는 늘 그랬듯 온통 신제품과 기술의 미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온 세상을 풍미하고 싶은 엔지니어의 꿈들로 도시 전체는 꿈틀거리며 생동감이 넘쳤고 그를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난해 CES는 5G, 인공지능(AI), 로봇 등 혁신기술로 우리를 자극했다. 올해 행사는 새로운 미래 10년을 여는 주요 기술들에 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핵심단어(Key word)는 연결성(Connectivity) 이었고 향후 10년을 연결된 지능(Connected Intelligence)이라고 표현했다.

CES 2020에 참여한 김명준 ETRI 원장(오른쪽)이 최양희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함께 주요 트렌드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 / ETRI 제공
CES 2020에 참여한 김명준 ETRI 원장(오른쪽)이 최양희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함께 주요 트렌드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 / ETRI 제공
그동안 제4차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중 하나로 불렸던 사물인터넷(IoT)은 만물인터넷(IoE, Internet of Everthing), 지능형사물인터넷(IoX)으로 개념을 확장했고, CES 2020에서 사물의 지능화(Intelligence of Things)로 불리는 등 재정의됐다. 지난해 4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G를 접목해 방대한(Massive) IoT, 필수적(Critical) IoT를 모두 수용하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무엇보다 이번 CES는 소프트웨어(SW) 그 중에서도 AI와 이동성 기술의 진보를 돋보이게 한 전시회였다. 그리고 전 세계 스타트업들의 눈부신 발전과 파괴적 혁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CES 2020은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우선 ‘삶과 함께하는 AI’다. 과거 AI는 자율주행이나 로봇 등 특화된 몇 가지 영역에 국한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집안 곳곳의 모든 기기에 장착되는 소비자가전 AI 시대가 열렸다. 가전제품은 물론, 생활 속 AI에 대한 재정의와 범위의 확대, 그리고 연구개발의 방향 등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기술협력을 통한 지능화 서비스의 확산’이다. 기존 IoT, 5G, AI 등은 개별적인 학문과 연구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따로국밥처럼 있었지만, 앞으로는 기술 간 협력형 생태계로 나아간다. 농업, 의료, 기업 등 전 분야가 골고루 지능화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확산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빼놓고는 이젠 새로운 파괴적 전환을 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셋째, ‘스마트 도시 기술발전의 지속적 관심’을 들 수 있다. 무인 자율자동차, 드론, 스마트 자동차 등 미래이동수단을 총동원한 이동성 확대 시대가 되면 공공의 안전을 위한 기술 기반 스마트 도시가 점차 중요해진다. 도시의 하부 개념으로서의 스마트 홈, 스마트 빌딩 등을 통해 점점 우리 생활 자체가 똑똑해진다. ICT 적용을 통해 최첨단화가 빨라진다.

넷째, ‘디지털 건강 생활’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건강의 중요성, 인간수명의 연장 등과 관련해 건강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수면기술, 유아 관련 기술, 건강관리, 원격의료 등 디지털 건강관리는 일상화된 생활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서비스 환경의 진화’다. 점차 화려해지고 고선명, 고기능으로 발달하는 미디어는 결, 미디어의 소비 성향을 크게 바꾸고 있다. 혼합현실(XR), 8K UHD 등 서비스 단말의 진화에 따라 미디어 산업 또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번 CES가 보여준 미래세상의 변화 조짐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ICT R&D를 이끄는 정부출연연 연구원장으로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제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파도 속에서 전시장을 꾸미고 나와 서로 자랑하는 모습이 생존을 위한 울부짖음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세계 일류의 기술개발을 위한 ‘개척자(First Mover)’는 한없이 외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CES 참관을 통해 죽여주는(Killer) 콘텐츠와 서비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탄탄한 핵심 원천기술 개발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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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인 김명준 ETRI 원장은 서울대학교(계산통계학과)와 카이스트대학원(전산학), 낭시제1대학교대학원(전산학)에서 공부했다. ETRI에 입사한 후 컴퓨터연구단 소프트웨어연구부장, 디지털홈연구단 인터넷서버그룹 그룹장, 클라우드컴퓨팅연구부 연구위원 등으로 근무했고, 정부가 소프트웨어 연구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도 역임했다. 현재는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