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AI+X ② 5G생태계 ③ CDO(최고디지털전환책임자) ④ 모빌리티 ⑤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⑥ 클라우드+ ⑦ 게임 구독·스트리밍 ⑧ M&A ⑨ X테크 ⑩ 뉴 디바이스 ⑪ 셰어링(Sharing) ⑫ 공간(Space) ⑬ 버추얼(Virtual) ⑭ 리질리언스(Resilience) ⑮ 딥페이크(Deepfake) ⑯ 퀀텀 ⑰ 리스킬(Reskill) ⑱ 인문학 ⑲ 뉴 시니어

‘시한폭탄' ‘재앙’ ‘공포' ‘비극' ‘벼랑’
초고령화 사회에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부정적 단어 일색이다. 과연 그럴까.

인구통계만 보면 탄식이 나올 만하다. 인구통계학은 연령대를 세 그룹으로 나눈다. 유소년(0~14세), 생산가능연령(15~64세), 고령(65세 이상)이다. 유소년과 고령층은 생산가능인구가 돌볼 대상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한국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72.0%다. 2011년 73.4%를 고비로 매년 감소 추세다. 유소년은 저출산 영향으로 10년 전 16.6%에서 12.5%로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고령층은 10.6%에서 15.5%로 급상승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고령자 부양 부담이 급격히 커졌다.

2019년 말 65세 이상 고령자가 처음 800만 명을 돌파,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가고 있다. / 행정안전부 2020.1
2019년 말 65세 이상 고령자가 처음 800만 명을 돌파,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가고 있다. / 행정안전부 2020.1
고령자 비율이 14% 이상을 고령사회, 20% 이상을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한국은 이미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진입속도가 일본보다 7년 빠르다. 2025년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올해 가속도가 붙는다. 73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잇따라 고령인구에 편입하기 때문이다.

의료기술 발달로 고령층 생존기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잠재성장률 하락, 의료비 부담 증가, 연금 고갈 등의 부작용 우려도 덩달아 커졌다.

하지만 고령 사회를 무조적 재앙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최근 부쩍 늘어났다. 부작용이 없지 않겠지만 부정적 전망이 과학적 근거없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조지프 코글린 MIT에이지랩 창립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이 늙는 경험은 개개인과 문화권마다 다르며, ‘생명력’과 같이 젊음과 늙음을 구분하는 용어도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나이대를 일률적으로 한 범주로 묶어 생산 없이 소비만 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편견"이라면서 "19세기 후반 연금과 노인보호시설이 나온 이후 고령자를 사회적 짐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이 퍼졌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고정관념은 고령자에 대한 젊은층의 적대감을 조장해 진정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의 저자 애슈턴 애플화이트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노인부양률’이라는 용어 자체가 65세를 넘으면 경제적으로 무거운 짐이 된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했다고 비판했다. 65세를 넘어도 자기 힘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화이트는 노인 의료비 부담 우려 역시 과장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비는 죽기 전에 가장 많이 들고 얼마나 병석에 오래 있느냐에 달렸는데 이는 나이와 무관하다"고 잘라말했다. 수십년간의 의료비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의료비 증가 원인 중 노화가 차지한 비중은 고작 2%, 의료기술 변화는 38~65%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인식하고 고쳐나가가는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사회경제학자들도 동조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령자 증가가 사회적 부담이 아니라 외려 새로운 기회로 봐야 한다는 연구도 나온다. 이들은 특히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를 주목한다.

신세대 노인 ‘베이비부머’
남다른 활동력과 씀씀이

베이비부머는 2차대전 이후 60년대 전반까지 사회·경제적 안정속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한국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출생자다.

부모세대보다 고성장 시기를 살아 축적한 재산이 상당하다. 학력도 높다. 개인주의적이지만 사고는 열렸다. 소비에 익숙하다. 늘 주도적으로 살아 성취 욕구가 크다. ‘뒷방 늙은이’로 자녀의 봉양만에 기대고 사는 부모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이 드디어 고령자 대열에 합류했다.

코글린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환경 운동을 일으킨 세대’, ‘냉전을 종식한 세대’와 더불어 새로운 수식어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고령층에게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 세대’다.

베이비부머가 부모세대보다 모아놓은 돈이 많다지만 사는 동안 다 쓰기엔 모자란다. 이 때문에 늙어서도 계속 일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재산을 무조건 상속하지 않고 소비하려는 경향도 있다. 전문가들을 이 때문에 베이비부머들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고령 노동과 소비 시장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를 주목했다.

액티브 시니어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있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5060세대를 뜻한다. 이들 뉴 시니어는 특히 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일이나 취미에 열심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상품과 서비스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소비자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월평균 카드 사용액이 3040보다 훨씬 많았다.

지금까지 시니어 시장은 건강과 요양 관련 식품과 용품, 재무설계 상품이 전부였다. 뉴 시니어의 진입으로 시장은 과거와 달리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안티에이징' 이라고 젊어보이게 하는 미용용품부터 패션, 레저관광, 반려동물 용품, 시니어타운, 디지털기기까지 웰빙형 소비 시장이 급격히 커질 전망이다.

특히 그간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017년 중국의 50세 이상 온라인 쇼핑 이용자와 소비액이 4년 전에 비해 각각 17배, 21배 늘었다.

노동 시장도 바꾼다
독일 자동차사가 찾은 해법

‘단디헬퍼’라는 스마트폰 앱이 있다. 일자리와 사람을 찾아주는 서비스다. 베이비시터 등 아동 돌보미, 가사·청소 도우미,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등 노인 돌보미 등 단기 일자리를 연결해준다. 의뢰자는 30~40대가, 구직자는 50~60대가 주류다.

단기 일자리 매칭 앱에 접속해 일을 찾는 사람 중 50~60대가 많다./
단기 일자리 매칭 앱에 접속해 일을 찾는 사람 중 50~60대가 많다./
스터디 애플리케이션이라고 있다. 최신 기술 지식, 취미, 어학, 글쓰기, 경리 등 실무 지식과 경험을 배우려는 사람과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배우는 이도, 가르치는 이도 젊은층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퇴직을 앞둔 중장년층의 참여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생산인구 감소 문제를 고령자 활용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선진국에서 활발하다. 제조업 강국,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뒀다. 출생률은 유럽 국가중 가장 낮다. 한국처럼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직면했다.

가뜩이나 준 젊은층은 제조업을 기피한다. 생산라인은 단순 조립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수십년 경험을 쌓은 숙련 노동자가 꼭 필요하다.

일할 사람은 줄고, 인건비는 늘어나는 문제에 직면한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고령의 숙련 노동자가 계속 일할 수 방안을 십여년 전부터 고민해왔다. 50대 이상이 일하기 좋은 라인 설계 등 다양한 시도를 했고 성과도 거뒀다. 다만 고령 노동자의 피로도를 낮출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노동자마다 의자를 두는 게 방법인데 공간 효율성 때문에 곤란했다.

해법을 착용형(웨어러블) 로봇 ‘누니’(Noonee)'에서 찾았다. 아이언맨 슈트처럼 입으면 힘들이지 않아도 무거운 짐을 옮기고 오랜 시간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아우디와 BMW는 이를 통해 은퇴를 앞둔 고숙련 노동자를 더 붙잡아 둘 수 있게 됐다. 한국도 현대로템, LG전자가 이런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웨어러블 로봇을 입으면 작업자가 힘이 덜 들이고 의자에 앉은 듯 편한 자세로 일을 할 수 있다./LG전자와 아우디
웨어러블 로봇을 입으면 작업자가 힘이 덜 들이고 의자에 앉은 듯 편한 자세로 일을 할 수 있다./LG전자와 아우디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가 비싼 자국에서 과연 계속 생산해야 할지 고민인 제조업체와 젊을 때보다 보수를 적게 받더라도 계속 일하고자 하는 중장년층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생산직만이 아니다. 사무직에서도 시니어 경험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인다. 특히 벤처기업들이 기업 임원 이상을 역임한 ‘C레벨’급 파트타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됐다. 경영 노하우가 부족한 벤처기업과 소일거리를 찾는 은퇴자가 상생하는 구조다. 로버트 드니로 영화 ‘인턴'이 현실이 되고 있다.

낡은 담론에 머문 한국 ‘발상의 전환을’

"그러면 고령자가 애먼 젊은층 일자리만 빼앗는 게 아니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시니어들이 찾는 일자리와 청년들이 찾는 일자리가 대부분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화이트는 일부 고령자가 젊은층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이야말로 근거 없고, 고약한 편견이라고 꼬집는다. 미국 퓨리서치가 40년간 실업률 조사결과를 분석한 결과 일을 하는 노인들이 많을수록 젊은이 취업률과 근로시간은 되레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초고령사회 노인문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시니어의 생산과 소비 활동을 적극 장려함으로써 사회적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정말 돌봄이 불가피한 노년층에 집중할 수 있어 한정된 복지 예산을 제대로 쓸 수 있다. 센서, 로봇 등 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서둘러 해법을 찾지 못하면 초고령사회가 진짜 ‘재앙’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아직 이런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노인세대=미래 세대의 짐’이라는 낡은 인식과 위기론 제기 단계에 머문다. 노인 일자리 수당과 연금을 놓고 정치 공방을 벌이는 수준이다. 청년 취업난과 겹쳐 자칫 노인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베이비부머 은퇴를 전환점으로 삼을 만하다. 청년 취업난에 숨통이 트이게 하면서 새로운 시니어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세대간 상생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완정 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기요양보험 도입 10년이 넘으면서 한국사회도 노인의 사회적 부담에 대한 준비를 어느 정도 했다"라면서 "앞으로 ‘어떻게 늙어가는 것이 좋으냐'와 같은 본질적인 의문에 답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비 노인들이 건강과 재무 준비를 비교적 잘했지만 마음의 준비는 부족하다고 본다"라며 "‘이상적인 건강장수' ‘이상적인 돌봄'과 같은 담론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덧붙였다.

일본 최대 노래방 체인 시닥스는 낮시간대 노래방을 시니어들이 춤과 전통 꽃꽂이 등을 가르치는 교실로 활용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대치동과 노원구와 대치동 학원가가 어쩌면 시니어들이 북적대는 배움터로 바뀔 지도 모를 일이다.

은퇴한 70대 로버트 드니로가 한 패션 기업에 입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턴'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