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AI 퍼스트 "늦었다. 지름길부터 찾자" ② 대통령이 앞장서라 ③ 가르칠 교수부터 키워라
④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데이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데이터"

인공지능(AI) 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데이터 확보다. 데이터3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우여곡절 끝에 통과하면서 데이터 확보의 길은 열렸지만, 법 취지를 살리려면 갈 길이 여전히 멀다.

법안의 핵심 개념인 ‘가명정보'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구체화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활용에 있어서도 국가 간 장벽을 허물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개정안 통과를 넘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다음 발걸음을 서둘러 옮겨야 한다. 그래야 AI 분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힘을 보탤 수 있다.

.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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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 추격하는 유럽연합(EU)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월 29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선진국의 소수 기업이 주도권을 가진 데이터 시장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하며 ‘데이터 단일시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가 구축하려는 데이터 단일시장은 유럽연합 국가 간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을 골자로 한다. 제조업과 헬스케어, 금융, 농업과 에너지 등 분야에 데이터 호환성 표준과 데이터 이전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유럽연합을 하나의 데이터 단일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유럽연합의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 등의 소수 기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세계 데이터를 잠식하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으로부터 비롯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4차산업의 특성상 이대로라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집행위원회는 데이터 단일시장 제안서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 주도권을 가져야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며 "당장 앞선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일도 그 곳에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데이터 종류와 활용 방법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 뒤쳐진 한국

주요 선진국이 데이터 시장의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는 가운데 한국은 아직도 국내 시장의 데이터 확보 방안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한다. 오히려 추상적인 법 개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활용 방안이 다시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학수 한국인공지능법회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데이터3법을 적용했을 때 실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동안 데이터3법 개정안 통과 자체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속조치에서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을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터3법 통과로 관련 업계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데이터를 활용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추상적인 법 개념만 제시된 상황에서 아직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주요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이종산업 간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을 보장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혁신에 다가설 수 있다고 업계는 전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데이터3법 통과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가이드라인이나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업계는 혼란을 느낀다. 아직 가능한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개발할 수 없는 단계"라며 "통계작성과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판단이 서지 않아 후속조치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는 금융사와 이통사가 금융 결합 상품을 내놓을 때 서비스를 일부만 변경해도 양쪽 모두 가입자에게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며 "데이터3법 통과로 이런 불편함이 해소되고 다양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생겼다"고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데이터3법을 실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려면 이종산업 간 자유로운 데이터 공유와 활용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유통회사와 금융기관 등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하면 소비자 맞춤형 금융 쇼핑 상품이 나올 수 있다. 이는 법이 원래 목적대로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을 보장할 때 가능하며 후속조치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데이터3법 후속조치에 시동을 걸었다.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2월까지 데이터 3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한다. 3월까지 행정규칙 개정안을 준비하기로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월 중 향후 계획을 담은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겠다"며 "후속 조치를 위해 관계부처들과 함께 통합감독준비단을 구성해 법 공포 전까지 관련 사항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1년 개인정보 보호법을 만들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개인정보 침해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개인정보의 주체인 국민의 불안과 우려는 데이터3법 통과 이후에도 지속됐다.

공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넘어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업계와 개인정보의 주체인 국민이 납득할 만한 후속조치를 얼마나 빨리 마련하느냐가 관심사다. 데이터를 활용한 AI 강국에 한걸음 더 나아가려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행보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게 산업계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