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힘들거나 외로울 때 ‘코끼리' 꺼내들어요"

차현아 기자
입력 2020.02.16 06:00
서울 중구의 한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창업가 미팅을 진행하는 공간 한 켠에 낯익은 스님 한 분이 앉아있다. 심리명상 앱 코끼리를 만든 혜민스님이다. 하얀 색 티를 입은 그는 노트북을 가운데 두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혜민스님과 대화하고 있던 이는 코끼리를 함께 만든 공동 창업자 다니엘 튜더였다. 기자를 본 다니엘 튜더는 인터뷰를 진행할 공유오피스 회의실을 따로 예약해뒀다며 기자를 안내했다.

언뜻 스타트업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창업가스러운 모습으로 공유오피스 곳곳을 누볐다.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펴낸 혜민스님은 국내에선 힐링멘토로도 유명하다. 현재 심리명상 센터인 마음치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다니엘 튜더는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 전 기자 출신이다. 한국에선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칼럼으로 눈길을 끌었다. 2017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청와대 비상근 정책자문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의기투합해 코끼리 앱을 만들었다. 개발자 2명과 함께 프로젝트처럼 시작한 코끼리는 현재 8명 직원을 갖춘 어엿한 기업이 됐다.

코끼리는 심리명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이다. 밤바다, 모닥불, 대나무숲 등 자연소리를 포함해 분노 다스리기, 숙면 취하기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짧은 명상 콘텐츠도 있다. 이외에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 콘텐츠, 자존감 수업 같은 심리상담까지 합치면 총 300여개 콘텐츠를 제공한다. 하루에 한 번씩 혜민스님의 명상강연 콘텐츠가 새롭게 제공된다.

최근 코끼리 앱은 꾸준히 성장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8월 출시돼 현재 17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에는 구글로부터 ‘올해를 빛낸 숨은 보석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니엘 대표는 국내 대기업이나 병원, 소방서 등 공공기관에서 코끼리 콘텐츠 제휴 제안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최근 SK브로드밴드 Btv에서도 ‘혜민스님의 코끼리 명상’을 볼 수 있다.

IT조선은 지난 12일 혜민스님과 다니엘 튜더 대표를 만나 앱 출시와 스타트업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혜민스님(왼쪽), 다니엘 튜더 대표가 앱 상징인 코끼리 인형을 들고 있다./ IT조선
―원래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었나. 심리명상 앱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다니엘 튜더(이하 다니엘) = "이런저런 창업 경험이 많다. 한국에선 2015년 더부스라는 맥주 회사를 공동창업했다. 영국에선 크라우드펀딩 관련 매체를 만들었고 웹소설 플랫폼도 운영해 봤다. 몇 년 전엔 한국에서 스페인 음식점도 운영했다. 집안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혜민스님이 명상을 제안해 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혜민스님께 명상 앱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혜민스님(이하 혜민) = "다니엘을 만나기 전엔 스타트업 이런거 잘 몰랐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은 했다. 마음치유학교에서 명상 수업을 하는데 서울이랑 부산에서만 강의가 있다. 사람들이 온라인으로도 좀 더 쉽게 명상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마침 다니엘이 한번 앱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서 함께하게 됐다."

―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공유오피스에 있으면 상담 해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나

혜민 = "특별히 그런건 없다. 사진 같이 찍자는 정도?"

다니엘 = "공유오피스가 원래 좀 쿨하지 않나. 서로 각자 자기 일하는 분위기다."

― 왜 코끼리인가

혜민 = "코끼리는 묵직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인다.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코끼리처럼 천천히 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의미에서 지었다."

다니엘 = "코끼리라는 단어도 소리가 특이하다. ㅋ, ㄲ 음이 연결돼 단어기도 하다(편집자주: ㄱ,ㅋ,ㄲ은 입천장 뒷쪽에서 혀와 맞닿았다 떼면서 소리를 내는 연구개 파열음이다). 비슷한 음이 반복되니 기억에도 오래 남을 단어라고 생각했다. 애플하면 사과가 아니라 스마트폰이 떠오르는 것처럼 코끼리하면 명상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혜민스님과 다니엘 튜더 대표가 코끼리 인형을 들고 있다./ IT조선
―두 사람이 같이 경영하나. 스타트업 운영하다보면 싸울 수도 있을 듯 같다.

다니엘 = "우리는 원래 친구사이다."

혜민 = "역할이 다르다. 저는 헤드티처고 이 친구는 대표다. 경영이나 사업은 다니엘이 하고, 콘텐츠 기획은 내가 한다. 하는 일이 겹치면 갈등이 있을 수도 있는데 겹치는게 없다보니 다행히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다니엘이 워낙에 영국 신사다."

―스타트업 경영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명상 앱 만들다 스트레스가 더 많아지지 않았나.

다니엘 = "예전 창업했을 때 투자 유치하려고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유치 보고서, 미팅 준비에 쏟았던 적도 있다. 정말 바쁘게 살았다. 지금은 그렇게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투자를 받기보단 조금 늦더라도 우리 힘으로 튼튼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여유있게 긴 호흡으로 일하고 있다.

요즘은 유니콘, 유니콘 하지 않나. 벤처캐피탈(VC)같은 투자자들은 투자한 회사에 빨리 유니콘이 되라고 압박한다. 사실 VC는 투자한 회사 100개 중 2~3개만 성공하면 좋은거다. 문제는 빠른 성장이 필요없는 나머지 97개 회사까지 같이 성장압박을 받는다는거다. 그러다보니 다들 성장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 유니콘 된다고 튼튼한 회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혜민 = "나도 공감했다. 우리는 일하는 분위기가 좋다. 10시 출근에 6시 정시퇴근이다. 회식하면서 술 마시라는 강요도 없지, 일 알아서 하게 놔두지, 성과내라고 쪼지도 않지. 근처에 명동성당도 있다. 명동성당을 바라보면서 일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럼 지금까지 투자는 안 받았나

혜민 = "없었다. 우리 두 사람 자금으로 시작했다. 서비스 시작 후 계속 흑자다. 초반이니 외부 투자를 받기보단 우리 스스로 세운 방향 맞춰 천천히 가고 싶었다. 서비스를 선보인 직후에 투자하겠다는 분들이 갑자기 많아지긴 했다. 한 15곳 정도? 거절했다."

―혜민스님이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앱을 만들어 수익을 낸다는 것에 초반 비판의 시선이 많았다.

혜민 = "코끼리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받아가는건 하나도 없다. 그냥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만든 앱이다. 구독료는 최소한의 콘텐츠 제작비용 차원이다. 지금 운영하는 마음치유학교 프로그램에도 무료와 유료 강의가 있다. 무료강의는 등록하고도 오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다. 콘텐츠를 조금은 소중히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봐주면 좋겠다."

./ 구글 플레이스토어 화면 갈무리
―코끼리 주 이용자 층은 어떻게 되나. 앱이라 20대가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뭔지 궁금하다

혜민 = "의외로 30대 이상이 많다. 50대도 많다. 여성이 75% 정도다."

다니엘 = "어느 정도 나이가 조금 들어야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것 같기도 하다."

혜민 = "숙면을 돕는 콘텐츠는 전 연령대에서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콘텐츠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명상이다. 평상시에도 들으면서 자신의 가치와 장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직장인을 위한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다. 성과가 잘 안날 때, 혹은 상사한테 혼났을 때, 주변 동료가 너무 싫을 때 퇴근하면서 들으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콘텐츠 종류도 다양하다. 이해인 신부, 허윤희 아나운서, 곽정은 작가 등 전문가 12명이 만들고 있다. 다니엘이 영어로 어린왕자를 낭독해주는 콘텐츠나 중년에 접어든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콘텐츠도 있다. 워킹맘들을 위한 콘텐츠, 남편과 갈등을 겪을 때 듣는 콘텐츠도 있다. 곽정은 작가가 만든 싱글족을 위한 콘텐츠도 곧 나온다. 혼밥할 때 듣거나, 잠 잘 때 외로운 사람을 위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과 불안 시달리고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 이유는 뭘까

다니엘 = "한국만 그런건 아니다. 영국도 비슷하다. 현대화된 사회는 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명상 앱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혜민 =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서다. 다들 효율성을 추구하고 뭔가 성과를 꼭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반드시 이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 모든 일들이 목적을 갖게 되고, 하다못해 친구를 만나도 목적을 갖고 만나게 된다. 결과를 만들어야 하니 일상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없다. 성과를 못내면 불안하고, 스스로를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자학한다."

―사실 명상을 한다고 일상 속 문제가 없어지거나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명상이 왜 필요한가

혜민 = "우리가 느끼는 삶의 문제는 사실 해석의 문제다. 현실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게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거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도 좋게 생각하면 즐거운 일이 되지만, 나쁘게만 바라보면 마냥 힘들고 상처만 된다. 명상은 그 고민이 세상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돕는다. 일시적인 문제가 내 삶 전체를 갉아먹지 않도록, 같은 상황에 처해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사업 발전 방향이나 추가로 구상하고 있는 콘텐츠는 어떤게 있나. 코끼리가 향후 추구하는 목표도 궁금하다.

다니엘 = "현재 여러 기관과도 콘텐츠 제휴를 진행하고 있다. 소방서와도 제휴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가 소방관이어서 그들이 어떤 트라우마를 겪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한 병원과도 제휴 논의 중이다. 통증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을 위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 대기업에서도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에 넣기 위해 우리와 콘텐츠 제휴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고 있다. 업무 상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혜민 = "심신의 문제는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도 무궁무진한 것 같다."

다니엘 = "코끼리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같은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잠이 안오거나, 혼자 뭔가 힘들어지거나, 친구와 만나 수다 떨듯 우리 앱을 꺼내 듣고 나면 조금은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 편안한 코끼리같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T조선 뉴스레터 를 받아보세요! - 구독신청하기
매일 IT조선 뉴스를 받아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