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DID(Decentralized ID·블록체인 신분증) 연합체들이 상용화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 간 기술 표준 관련 논의는 충분치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DID가 자칫 ‘원아이디’가 단명했던 과거를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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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아이콘루프 주도의 마이아이디 얼라이언스와 국내 통신 3사를 주축으로 한 이니셜 DID 연합, 보안사와 금융사를 주축으로 한 DID 얼라이언스 코리아 등
3곳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은 특히 자신들의 세를 더 키우기 위해 회원사 모집에 더욱 적극적이다.

DID는 사용자 신원증명정보를 본인이 직접 발급해 관리하는 서비스다. 기존 중앙집권형 디지털 체제는 해커가 특정 시스템을 공격할 경우 손쉽게 개인정보 탈취가 가능했다. DID 데이터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여러 컴퓨터에 분산 저장돼 보다 안전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한다. DID가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방식의 모바일 신분증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현재 이들 연합은 각기 다른 표준을 참고해 올해 상반기 내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일부는 해외에서 DID 표준을 세운 분산인증협회(DIF)와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 등을 참고하고 있다.

원아이디 노선만 밟지 말자

이들이 해외 표준을 참고하는 이유는 국내 표준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DID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시급한 해결 과제로 ▲기술 표준 확립 ▲제도 마련 ▲생태계 구축 ▲편리한 사용성 등을 꼽는다.

무엇보다도 기술 표준화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표준이 없으면 각 기관 또는 얼라이언스마다 참고하는 기술 표준이 달라 서로 다른 DID를 구현할 수밖에 없다. 연동성 문제가 생길 여지를 높인다. 특히 각 서비스별로 모바일 신분증을 제각각 발급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수 있다.

앞서 SK플래닛이 선보인 원아이디 서비스가 연동성 문제로 폐지된 대표 사례다. 원아이디는 SK플래닛이 SPC의 해피포인트처럼 멤버십을 통합 운영하고자 만든 서비스다. 당시 SK플래닛은 계열사 8곳 멤버십을 교차 이용할 수 있다고 선언해 출시 1년만에 1200만명의 회원을 모았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이 서비스는 출시 3년 8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계열사 간 기술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연합군이 속속 탈퇴했기 때문이다.

계열사 간 통합도 힘든데, 각 DID연합은 각종 산업군에 퍼진 기업과 기관을 연합군으로 끌어들인다. 표준이 없는 상황이라 각 기업과 기관이 각 DID 연합에 요구하는 점은 제각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인 만큼 국민들의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하나로 통합해도 이용자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릴텐데 서비스 출시 후 호환이 되지 않아 따로 노는 서비스로 인식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이 DID 기반 서비스를 활용할 근거는 시스템 연계를 통한 편리함이다"라고 강조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원아이디의 가장 큰 문제는 편리함이라는 명목 아래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며 "당시 각 사이트 간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객은 원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각 계열사 사이트 별로 본인 아이디를 별도로 인증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 표준화 논의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비스가 출시된다면 DID도 원아이디 꼴이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DID 표준화 논의 無

기술 표준화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시급함은 이미 과기정통부도 인지했다. 민원기 차관은 2019년 12월 개최된 ‘블록체인 진흥주간’ 행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서비스 연동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 차관은 "국내 DID 관련 연합체는 3~4곳이 넘는다"며 "민간에서 DID 기술 표준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할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DID 서비스 사용자가 모바일 신분증을 각 서비스 별로 제각각 발급해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업계는 기술 표준화를 이끄는 주체인 과기정통부가 민 차관 발언 이후 3개월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DID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는 DID 법제화와 관련해 TF를 꾸리는 등 상용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술 표준을 마련해야 할 과기부는 정작 미동도 없다"고 밝혔다.

DID 국내표준과 해외 표준을 담당하는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역시 DID 표준화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KISA 한 관계자는 "국내 표준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술 표준 마련을 논의할 지 말지를 검토 중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아직 표준 마련에 대해 업계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상반기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는 DID 연합체 우려는 점점 높아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 여러 서비스가 먼저 출현한 뒤 HTTP(인터넷에서 웹 서버와 사용자의 인터넷 브라우저 사이에 문서를 전송하기 위해 사용되는 통신 규약)가 마련됐다"면서도 "통합시킬 프로토콜을 개발해 향후 DID 플랫폼들에 적용할 순 있겠지만, 표준을 정할 지 말지 검토하는 것에 멈춰있을 게 아니라 국내 DID 이해관계자들과 활발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서 최소한의 표준이 생겨 업계가 잘 단합하면 세계 DID 시장에 귀감이 될 수 있다"며 "다른 국가가 참고할 수 있는 표준이 세워진다면 우리나라에서 DID 주도권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