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패권을 두고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월트디즈니와 넷플릭스가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애니메이션(이하 애니) 시장에서 콘텐츠 경쟁을 벌인다. 넷플릭스는 디즈니가 보유하지 못한 ‘성인' 콘텐츠로 차별화했다.

월트디즈니의 무기는 방대한 콘텐츠 자산이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와 전 세계 SF마니아층을 꽉 붙잡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 2019년 3월 인수합병 절차를 마무리 한 21세기 폭스의 영화·TV 사업 부문이 보유한 콘텐츠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애니 콘텐츠의 경우 디즈니가 매출과 인지도 면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디즈니 애니 겨울왕국의 경우 영화 매출은 12억8000만달러(1조5240억원), 상품 매출은 2015년 기준 미국에서만 1072억달러(120조원)에 달한다.

원트디즈니는 영화로 성공한 마블 슈퍼히어로와 스타워즈를 애니 콘텐츠로 만드는 등 원소스멀티유즈 전략을 펼친다.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며 경쟁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OTT 강자 넷플릭스는 ‘애니 왕국'이라 평가받는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다. 핵심 무기는 성인 애니 콘텐츠다.

심슨 작가의 넷플릭스 독점작 ‘디스인챈트'. / 넷플릭스 제공
심슨 작가의 넷플릭스 독점작 ‘디스인챈트'.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는 울트라맨, 데빌맨 등 일본발 글로벌 히트작을 소재로 한 독점 애니를 보유했다. 또한 거친 사회풍자로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부상한 ‘심슨(The Simpsons)' 시리즈의 제작자 맷 그레이닝(Matt Groening)을 기용해 만든 ‘디스인챈트', SF단편을 묶어 성인 시청자 시선을 집중시킨 ‘러브 데스 로봇' 등 성인 시청자를 정조준했다.

월트디즈니는 넷플릭스와 달리 전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애니 보급에 힘쓴다. 방대한 애니 콘텐츠를 보유했지만 성인 콘텐츠는 거의 없다.

반면 넷플릭스는 성인 콘텐츠 보급처임을 자랑한다. 이용약관에도 성인을 위한 서비스라고 명시했을 정도다. 이는 성인 콘텐츠가 적은 디즈니 플러스와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차별화 요소다.

넷플릭스는 성인 애니 발굴을 위해 일본 애니 제작사와 인기 작가를 포섭했다. 2018년 프로덕션I.G·본즈·아니마·서브리메이션·데이비드프로덕션 등 5개 현지 애니 제작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2020년 2월 25일에는 다수의 히트작을 배출한 만화집단 ‘클램프', 인기 SF작가 ‘우부카타 토우(冲方丁)’ 등 일본을 대표하는 6명(팀)의 창작자를 섭외해 직접 애니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프로덕션I.G는 4월 ‘공각기동대 SAC 2045’를, 아니마는 넷플릭스서 인기를 끈 독점 SF드라마 ‘얼터드 카본'을 소재로 한 신작 애니를,서브리메이션은 게임 ‘드래곤즈 도그마'를 원작으로 한 애니를 만든다. 데이비드는 인기 만화 ‘스프리건'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를 제작한다.

넷플릭스가 일본에서 제작한 독점 애니는 실제로 일본 현지는 물론 세계 각지 애니 마니아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는다. 트위터와 일본 동영상 서비스 니코니코 등에는 "신(神)급 애니 라인업이 굉장히 맘에 든다"는 등 의견이 등록됐다.

일본발 넷플릭스 독점 애니 ‘세븐시드'. / 넷플릭스 제공
일본발 넷플릭스 독점 애니 ‘세븐시드'. / 넷플릭스 제공
독점작 ‘세븐시드’의 경우 넷플릭스가 있었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만화가 타무라 유미가 2001년 공개한 SF만화 세븐시드는 16년간 연재된 인기작으로, 만화 팬들 사이에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븐시드 만화는 일본 현지에서 단행본 기준으로 600만부 이상 판매됐다. 현지 만화 팬이 여러차례 애니 제작을 요구했지만, 16년 동안 단 한번도 애니로 제작되지 못했다. 일본 애니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의 투자가 없었다면 애니로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마크 워던(Mark Worden)’ 작가겸 컨설턴트는 "과거 일본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성인 애니 콘텐츠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빠르게 성장 중이다"고 밝혔다.

워던은 "서구권 20대 초반 젊은세대 사이서 만화와 애니 콘텐츠 소비 경향이 최근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대 초반 유럽 젊은세대 40%쯤이 만화·애니에 푹 빠져있다. 워던은 ‘만화' 주제 전시회가 영국박물관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는 것은 서구권에서 만화와 애니에 대한 광풍이 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워던은 "성인 애니 콘텐츠의 인기는 넷플릭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며 "넷플릭스에서 시즌이 이어진다는 것은 해당 콘텐츠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