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쏘카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 대표는 국내에 신개념 승차공유서비스 타다를 소개하며 혁신 실험에 나섰지만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쓸쓸히 퇴장한다.

쏘카는 13일 이사회를 열고 이 대표가 물러난 신임 대표이사 자리에 박재욱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VCNC 대표를 겸직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 / 쏘카 블로그 갈무리
이재웅 쏘카 대표. / 쏘카 블로그 갈무리
1995년 다음 창업…2018년 쏘카 대표 취임해 모빌리티 혁신 목표 내걸어

이 대표는 우리나라 ‘벤처 1세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95년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을 시작으로 25년간 벤처업계를 질주했다.

연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프랑스 제6대학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했다.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 후 1997년 한메일 서비스를 내놓으며 국내 본격적인 개인 이메일 시대를 열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00년대 초반 당시 포털사이트 1위 야후를 제치고 국내 1위 포털사이트로 올라섰다. 이 대표는 2007년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벤처투자자로 변신한 그는 2008년 사회적 벤처 인큐베이터인 ‘소풍’을 설립해 후배 스타트업을 양성했다. 차량공유업체 쏘카도 소풍을 통한 투자와 노하우 전수 과정에서 인연이 생겼다.

쏘카의 최대주주였던 이재웅 대표는 2018년 4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11년만에 벤처 경영인 복귀였다.

그는 취임 후 쏘카를 기술·데이터 기반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스타트업 VCNC를 인수해 타다를 출범시켰다.

이 대표는 차량공유·호출 사업을 금지한 법 제도 안에서 타다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법 예외조항을 활용했다. 타다는 면허 없이 11인승 렌터카를 이용한 차량호출 사업을 이어갔고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2018년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추천으로 기획재정부 산하 혁신성장본부 민간본부장직도 맡았으나, 4개월 만에 물러났다.

2월 19일 법원 무죄 판결 이후 웃는 모습의 이재웅 쏘카 대표. / 조선일보 DB
2월 19일 법원 무죄 판결 이후 웃는 모습의 이재웅 쏘카 대표. / 조선일보 DB
"혁신이 이긴다"고 외친 이재웅, 마지막엔 "정부와 국회는 죽었다"

"역사적으로 늘 혁신이 이겨왔고 이기는 것이 맞다."

이 대표가 후배 창업가들에게 강조해온 자신의 가치관이다.

하지만 똘똘 뭉친 택시업계와 대결은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국토부는 일찌감치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주고 모빌리티 업체들을 택시 체계 안에 편입시켰다. 국회는 사실상 타다 영업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원은 2월 19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치관이 무너진 창업 1세대는 쓸쓸한 퇴장을 택했다.

그는 할말은 했던 ‘실패한 모빌리티 혁신가’였다. 타다를 허용하지 않는 정부와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불법 영업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굽히지 않고 소신을 외쳤다.

다만 특유의 직설적 발언 때문에 매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부에서는 그를 ‘독불장군’이나 ‘관종(관심종자)’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용자 편익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 모빌리티 대타협은 의미가 없다며 페이스북에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을 해왔다.

그는 2019년 2월 홍 부총리가 "기존 이해관계자의 반대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타다)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어느 시대 부총리인지 모르겠다"로 쏘아붙였다.

타협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자신을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한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에 대해서는 "갑자기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 출마하시려나"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또 지난해 택시기사의 분신이 계기가 된 택시업계의 타다 퇴출 요구에 대해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죽음을 정치화하고 죽음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타다금지법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타다 운영으로 얻는 이익의 사회 환원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타다의 최대 주주로서 앞으로 타다가 잘 성장해서 유니콘이 되거나 기업공개를 해 제가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세계에 없는 새로운 모빌리티 플랫폼 모델을 만들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법안이 국회서 통과한 직후 그는 "국토부와 국회는 국민 선택권을 빼앗고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렸다"며 "혁신을 금지한 정부와 국회는 죽었다"고 작심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