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패스트트랙으로 임상 실험 돌입
동물실험 간과한 조급한 임상에 논란 커질 듯
전문가들 "동물실험은 백신 개발의 기본"

미국과 중국이 패스트트랙(신속승인) 제도를 앞세워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인체 임상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는 점에서 패스트트랙을 통해 신약이 개발될 수 있는 만큼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치료제와 달리 한 번 주입되면 면역체계를 바꿔놓을 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등을 통한 안전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중국이 동물 실험을 건너뛰고 인체실험에 조급하게 나서면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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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나선 美·中 "상황이 상황인지라"

20일 바이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최근 코로나19 백신 인체실험에 나섰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3월 16일(현지시각) 시애틀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인체에 주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백신 후보물질(mRNA-1273)을 개발한 지 약 2달 만이다. 이번 임상은 성인남녀 45명을 대상으로 6주에 걸쳐 부작용을 테스트한다. 통상적으로 거치는 동물실험은 생략했다. AFT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백신이 실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접종되기까지 약 1년~1년 반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모더나 임상 계획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시험계획(IND)을 긴급 승인하면서 가능했다. FDA는 치료가 시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임상 전 독성검사를 축소하고 관련 의약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다. 모더나의 경우, 동물실험 외 어떤 점을 근거로 승인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역시 빠르게 임상에 들어갔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천웨이(陳薇) 중국 공정원 원사 연구진이 개발한 백신이 최근 당국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코로나19 인체실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한 지 19시간 만이다.

중국 1차 임상은 피험자 20~30명을 대상으로 한다. 안전성을 주로 테스트한다. 약 1~2주간 관찰 후 2차 시험 여부를 결정한다. 2차 시험은 대조 실험군 추가로 수백 명의 피험자가 참여할 예정이다.

사라지거나 간단해진 동물실험…왜

외신들은 FDA 결정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FDA가 동물실험을 건너뛴 적이 없기 때문이다. FDA는 홈페이지에 "동물은 의약품과 백신, 생물 제제, 의료기기 안전성 실험에 주로 사용된다"며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유효하지 않으며, 가능한 옵션도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매체 더뉴리퍼블릭은 "백신 개발사는 후보물질을 사람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동물실험을 필수로 진행한다"며 "미국에 동물실험을 꼭 해야한다는 법은 없지만, FDA는 그간 물질을 사람에게 적용해도 된다는 증거를 동물실험에서 찾아왔다"고 전했다. 이어 "모더나는 FDA로부터 이러한 절차를 꼭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승인을 받은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FDA는 모더나가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했다.

중국 임상 실험 역시 유독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천웨이 연구팀이 백신 개발을 위해 1월 26일 중국 우한에 도착한 지 겨우 51일 만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 이후 임상 신청을 한 시기는 2월쯤으로 예상된다.

동물실험도 짧은 시간 내에 간단히 진행됐다. 천웨이 연구팀과 백신 개발을 함께 진행하는 칸지노 바이오에 따르면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백신 후보물질이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통상 백신 후보물질 위험성 테스트에만 수 개월이 걸리는 동물실험 과정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 같은 신속한 진행은 중국군 최고 지휘부 중앙군사위원회 입김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영자지 SCMP는 "중국 지도부가 다른 나라에서 먼저 백신을 개발하면 체면을 잃을까봐 걱정했다"며 "중국군 최고 지휘부인 중앙군사위원회는 인민해방군 군사의학과학원에 매일 백신을 개발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겸직한다.

중국 보건당국은 이르면 4월부터 백신을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중국 매체 환구시보는 "중국이 시험과 승인 절차 속도를 낼 수 있는 체제인 만큼 백신은 미국을 앞서 출시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부작용 속출 우려"...패스트트랙, 안전성 도마 위로

관련업계는 미국과 중국이 백신 개발에 나서면서 동물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만약에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한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치료제와 달리 개발 기간이 5년에서 20년 정도로 길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거쳐야 할 실험과 제시해야 할 근거가 많기 때문이다. 백신은 사람 몸에 한 번 주입되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스스로 바이러스 침범에 대응하도록 만든다. 조급한 임상에 나선 미국과 중국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과학저널 네이처지는 2015년 메르스 항체를 개발해 큰 화제를 모은 장스보(姜世勃) 푸단대학 교수를 인용해 "충분한 안전성 테스트와 동물실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인체 면역시스템을 다른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의학 윤리(medical ethics)와 관련한 논문을 써온 니콜라스 에반스 매사추세츠 대학 사회과학과 부교수는 "이들 임상은 단순히 안전성을 건너 뛰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동물실험으로 백신 유용성 여부 등 관련 지식을 배우는 중요한 단계를 건너 뛰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백신계 권위자로 통하는 피터 호테즈 베일러 컬리지 열대의학 학장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충분한 동물실험은 필수다"라며 "백신에 포함된 단백질이 오히려 바이러스 침투를 도와 백신 접종 후 더 심하게 병을 앓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연구에서도 동물실험 덕분에 이러한 부작용을 미리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2004년 보고된 사스 백신 연구에서 백신에 접종된 족제비는 간 염증반응을 일으켰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현재 코로나19 관련 인체실험에 들어간 백신은 없다. 식약처가 동물실험에서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인체 임상을 허용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은 함께 이뤄질 수 없는 별개 사안이다"라며 "의약품과 관련해 아직까지 동물실험을 대체한 시험법은 인정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