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하루천자’ 글감은 해외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Vios ke politia tu Aleski Zorba) 중에서 다섯 대목을 추천받아 게재합니다. 고(故)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열린책들 출판본을 참고했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다음으로 꼽은 사람이 조르바입니다. ‘위대한 자유인’ 조르바를 즐거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A4 크기의 종이에 천천히 필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하루천자 태그를 붙여 올려주세요. /편집자 주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1917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고향 크레타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요르고스 조르바스'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실제 발칸전쟁에 참전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투영해 재창조된 인물이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1917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고향 크레타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요르고스 조르바스'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실제 발칸전쟁에 참전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투영해 재창조된 인물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①
(비즈니스 글쓰기 전문가 백승권 작가가 추천한 #하루천자 / 글자수 981, 공백 제외 728)

그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솟아오르던 그 분노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 내가 영위하고 있던 삶에 대한 나의 모든 역겨운 감정이 그 말로 형상화되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다 자신을 그리도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병통을 알았으니 이제는 쉬 정복할 수 있으리라. 이제 그것은 모호하지도 막연하지도 않았다. 이름과 형태가 있으니 그에 맞서 싸우기도 훨씬 수월할 터였다.

그의 말이 내 내부에서 조용히 자라났던 모양이다. 나는 종이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게 되었다. 나의 문장(紋章) 한가운데 그 한심한 벌레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한 달쯤 전에 내가 바라던 기회가 왔다. 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리비아와 마주 보는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임차했다. 이제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이 여행이 신비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기나 한 듯이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나는 내 삶의 양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실체 앞으로 데려갈 테다. 마침내 나는 준비를 마쳤다.

떠나기 전날 밤, 종이들을 뒤적이다가 나의 미완성 원고와 마주쳤다. 나는 그 원고를 집어 들여다보며 망설였다.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臟腑)로 느껴 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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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은 (사)한국IT기자클럽, (주)네오랩컨버전스, (주)비마인드풀, (주)로완, 역사책방과 함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은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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