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가 세계에 확산하면서 외출을 꺼리고,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물리적 접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게임 수요는 자연스럽게 늘었다. 2월 세계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39%쯤 늘어 40억건을 기록했다.

최근 PC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의 동시 접속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해 2000만명을 돌파했다. 스팀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서드파티 웹사이트 ‘스팀 데이터베이스’ 통계를 보면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레인보우식스 시즈’ 등 다수 게임은 코로나19가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2, 3월 동시접속자 수가 늘었다.

하지만 펍지주식회사의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는 꾸준히 내림세를 보인다. 2017년 나온 배그는 배틀로얄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 게임이다. 배그의 인기가도에 위협을 느낀 경쟁 게임사들은 배그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배틀로얄 게임을 잇달아 선보였다. 배그는 3년 이상 서비스한 게임으로, PC는 물론 콘솔이나 모바일버전도 출시됐다.

. / 펍지주식회사 제공, 편집=오시영 기자
. / 펍지주식회사 제공, 편집=오시영 기자
23일 펍지 한 관계자는 "최근 배그 지식재산권(IP) 게임을 PC(스팀·카카오) 플랫폼뿐만 아니라 콘솔, 모바일 등 여러 플랫폼에서 서비스한다"며 "배그 팬은 스팀 외에도 다양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모바일의 경우 다양한 콘텐츠와 '로얄 패스'를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높은 일일 이용자 수(DAU)를 유지하는 상황이다"며 "스팀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출시 이후 다소 시간이 흘렀지만, 이용자의 게임 플레이 환경을 개선하고 콘텐츠 추가 등으로 새 재미를 꾸준히 제공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부분별한 일부 게이머의 ‘핵’ 사용이 배그의 인기를 떨어뜨린 핵심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스팀 동시접속자 수가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배그 핵 사용 이슈는 게임사의 게임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준 사례다"라며 "불법프로그램을 활용한 반칙플레이를 막아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총싸움게임 숙명이기도 한데, 배그의 경우 오랫동안 이 문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2일까지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동시접속자 수 변동 추이. / 스팀DB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2일까지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동시접속자 수 변동 추이. / 스팀DB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레인보우식스 시즈’ 동시접속자 수 변동 추이. / 스팀DB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레인보우식스 시즈’ 동시접속자 수 변동 추이. / 스팀DB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오펜시브, 레인보우식스 시즈는 각각 2012년, 2015년 출시한 총싸움게임이다. 두 게임은 최근 스팀 기준 동시접속자 수가 급상승했다. 배그와 상반된 모습이다.

카운터스트라이크 이용자 수는 2019년 1, 2, 3월 이용자 수 50만명 선을 유지하다가 2020년 같은 기간에는 70만~80만명을 넘는 등 최근 이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 3월 22일 110만명을 돌파했다. 레인보우식스 시즈의 2019년 1~3월 이용자 수는 9만~10만명 수준이다 2020년 3월에는 19만명쯤까지 급증했다.

총싸움게임 외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는 많은 게임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동시접속자 수 지표가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MMORPG’ 검은사막, 축구 매니지먼트게임 ‘풋볼 매니저’, 오픈월드게임 ‘GTA5’, 액션게임 ‘몬스터헌터 월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배틀그라운드’ 동시접속자 수 그래프. / 스팀DB 갈무리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배틀그라운드’ 동시접속자 수 그래프. / 스팀DB 갈무리
2017년 출시된 ‘한국 출신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스팀 단일게임 동시접속자 수 325만명을 넘기면서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이 최근에는 무색하다. 배틀그라운드 동시접속자 수는 2019년 1월에 100만명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고, 2, 3월에는 80만명쯤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20년 3월에는 40만~50만명 수준이었다. 잘나갈 때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업계·이용자 사이에서는 배틀그라운드가 내림세를 보이는 주된 원인으로 ‘무분별한 핵(불법프로그램) 사용’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틀그라운드는 특히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과정에 기상천외한 불법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총싸움 게임 제작사는 ‘핵과의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고, 유독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핵 이용자의 변칙 플레이 정도가 심하다. 자동 조준은 물론, 순간이동을 하거나 벽을 통과해 적을 잡는 등 게임사가 정한 룰을 위배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에서 ‘배틀그라운드 핵’을 검색한 모습, 핵을 만나고 놀라워하는 영상 창작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에서 ‘배틀그라운드 핵’을 검색한 모습, 핵을 만나고 놀라워하는 영상 창작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유튜브 갈무리
핵은 정상적인 플레이를 즐기려는 게이머의 경험을 크게 망치는 요소다. 한 판에 100명이 참여하는 배그 게임에 핵 이용자 한 명이 들어올 경우 나머지 99명이 피해를 본다.

펍지 측은 핵을 막기 위해 배그 부정행위 대응 조직인 '안티 치트 유닛'을 별도로 꾸려 운영할 정도로 노력했다. 하지만 핵 사용자가 너무 많아 모든 부정행위를 걸러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크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불법프로그램 피해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배그의 전성기였던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 핵을 사용해 영구정지를 당한 계정 수는 1169만5949개에 달한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핵 관련 제재 계정 수의 100배에 달하는 수치다.

총싸움게임을 좋아하는 한 게이머는 "물론 다른 게임에도 핵이 많지만, 배그의 경우에는 선을 넘은 경우가 많다"며 "좋은 게임을 핵이 망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총괄한 브랜든 그린은 2017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핵 방지 프로그램 ‘배틀아이’에 따르면, 핵 사용자 중 99%가 중국 이용자다"라고 말했다.

중국 해커는 게임 내 경험을 망치는 것에 이어 이용자 보안을 위협하기도 한다. 중국 해커가 게이머의 스팀 계정을 해킹한 뒤 해당 계정으로 핵을 사용해 정지 당하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등장한 ‘콜 오브 듀티 워존’ 등 배틀로얄 경쟁작이 흥행한 점도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를 위협하는 요소다.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11일 무료로 공개한 배틀로얄 게임 ‘콜 오브 듀티 워존’은 출시 10일쯤 만인 21일 기준 이용자 수 3000만명을 돌파했다. 콜 오브 듀티 워존의 인기 요인은 배틀로얄 장르 기본 문법에 ‘장비 커스터마이징’, ‘1:1 굴라그 전투’, ‘무한 부활 약탈 모드’ 등 다양한 콘텐츠를 녹여낸 점,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점 등이다. 액티비전은 18일 혼자 배틀로얄을 진행하는 ‘솔로모드’를 추가해 인기 ‘굳히기’에 나섰다.

위정현 학회장은 "여느 게임이 그렇듯 배그도 출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 유저와 신규 유저 간 차이가 벌어지는 ‘고인물’ 현상이 나타나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포트나이트’ 등 배틀로얄게임 후발주자가 다수 등장한 것도 특히 북미·유럽 시장에서 배틀그라운드가 고전하는 원인 중 하나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