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천자’ 글감은 ‘바람과 풀의 시인’ 김수영(金洙暎)의 시(詩) 중에서 골랐습니다. 일상적인 언어·담담한 어조로 자기자신을 풍자하는 묘한 분위기의 시를 감상하시면서, 작가의 냉소적인 표정도 함께 그려 보세요.

A4 크기의 종이에 천천히 필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하루천자 태그를 붙여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격동기를 살았던 시인 김수영.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고,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격동기를 살았던 시인 김수영.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고,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H / 김수영

H는 그전하곤 달라졌어
내가 K의 시 얘기를 했더니 욕을 했어
욕을 한 건 그것뿐이었어
그건 그의 인사였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그것뿐
그밖에는 모두가 좀 달라졌어

우리는 격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어
훌륭하게 훌륭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
그의 약간의 오류는 문제가 아냐
그의 오류는 꽃이야
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의 수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 또 한복판이 되구 있어
그도 이 관용을 알고 이 마지막 관용을 알고 있지만
음미벽(吟味癖)이 있는 나보다는 덜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그가 나보다도 아직까지는 더 순수한 폭도 되고
우리는 월남의 중립 문제니 새로 생긴다는 혁신정당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아 비겁한 민주주의여 안심하라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구 있었던 게 아니야

우리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고
그는 그전처럼 욕도 하지 않았고
내 찻값까지 합해서 백 원을 치르고 나가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필시 속으로는 나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그전하곤 달라졌어
그는 이제 조용하게 나를 경멸할 줄 알아
석 달 전에 결혼한 그는 그전하곤 모두가 좀 달라졌어
그리고 그가 경멸하고 있는 건 나의
정치 문제뿐이 아냐

(196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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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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