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제네시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2008년 현대차의 고급세단으로 등장한 제네시스는 2015년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명으로 계승됐다. ‘세단' 제네시스는 사실 태생부터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를 품은 채 탄생했다. ‘세단’ 제네시스는 신생 브랜드에 이름을 넘긴 뒤 G80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G80은 2008년 1세대(BH)와 2013년 2세대(DH)를 거쳐 2016년부터 브랜드 대표 세단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에쿠스에서 EQ900, G90으로 이어져온 플래그십과는 또 다른 행보를 걸었다. G80은 수입차의 격전지로 불리는 준대형~대형 세단 시장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쌓아왔다. 올 3월말 등장한 3세대 완전변경 G80에 대해 회사측은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제네시스 G80을 서울 양재와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시승했다.

고급 브랜드에 걸맞은 최신 편의·안전품목 탑재
진화한 크루즈 컨트롤, 방향지시등만 넣어도 차선 변경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14.5인치 대형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GV80에서도 선보였던 화면인데, 내비게이션 화면부터 메뉴 구성, 화면 분할까지 수입차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G80의 디스플레이 구성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대형 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전방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와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까지 길 안내 화면을 비춰준다. 디지털 클러스터의 경우 3D 기능을 더했다. 계기판 바늘은 물론 길안내 정보까지 구간별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주행 중 주변에 접근하는 차들을 그래픽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도움이 된다.

적응형 크루즈 컨트롤은 고급세단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 지정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고, 앞차와의 간격 및 상대속도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임을 조율한다. 여기에 운전자의 주행성향을 차가 학습,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기능도 탑재했다. 또 내비게이션과 연계해 고속도로 진출입로나 급 회전구간, 과속단속 구간 등에서 알아서 속도를 줄여주는 센스까지 갖췄다.

G80의 크루즈 컨트롤에선 자율주행 기술의 단초도 엿볼 수 있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한 상태(HDA II)에서 방향지시등을 켜면,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을 돌리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차선을 바꾼다. 안전을 고려해 작동 조건 등이 보수적으로 설정됐지만, 손에 익으면 꽤 유용한 기능이다.

G80 안전기술의 핵심은 차세대 융합형 센서다. G80은 전방, 전측방, 후측방 레이더가 함께 작동해 차 주변 상황을 빈틈 없이 대비한다. 교차로 진입 시 맞은 편에서 오는 차, 추월 중 측면으로 접근하는 차, 전방에 접근하는 보행자나 자전거 등에도 명민하게 반응한다. 운전자에게 시청각 신호로 경고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직접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밖에 전방 시야를 밝게 비추면서 마주오는 차를 방해하지 않는 지능형 전조등, 차가 급격하게 움직일 경우 자동으로 등받이를 앞으로 당겨 탑승객의 자세를 안전하게 조정해주는 프리액티브 세이프티 시트, 안전이 확인된 후 문이 열리는 안전 하차 보조, 뒷좌석 승객 알림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한 안전 기능을 갖췄다.

세련된 디자인에 주행성능까지 진화
편안하고 고급스런 실내, 편의품목 조화 돋보여

3세대 G80은 제네시스 3세대 후륜구동 기반 플랫폼으로 제작됐다. 차체를 낮춰 무게중심을 아래에 둔 것이 핵심이다. 덕분에 실내 거주공간을 넓히면서도 매끈한 실루엣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주행 안정성이 개선된 것은 물론이다. 실제 신차는 기존대비 폭이 35㎜ 넓고, 높이는 15㎜ 낮췄다. 그러면서 2열 헤드룸(머리 위 공간)과 레그룸(다리 공간)은 소폭 늘렸다.

브랜드 정체성은 한층 짙어졌다. 방패형 크래스트 그릴, 두 개의 선이 가로지르는 쿼드램프 등이 대표적이다. 볼륨감을 강조한 펜더(타이어를 덮고 있는 부분), 매끄럽게 떨어지는 지붕선 등은 고급 클래식카를 연상케 한다.

실내는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구성은 단순하되 마감은 천연가죽과 원목 등 고급소재를 아낌없이 적용했다. 앞좌석은 7개의 공기주머니로 정교하게 자세를 잡아주는 에르고모션 시트다. 변속기는 노브(기어봉) 대신 전자식 변속 다이얼을 적용했다. 주변엔 무선충전패드, 손글씨까지 인식하는 통합 컨트롤러 등을 정교하게 배치했다. 취향에 따라 64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앰비언트 무드램프, 고급 오디오 시스템 렉시콘 사운드 패키지, 뒷좌석 듀얼모니터 등도 눈에 띈다.

시승차는 V6 3.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었다. 최고 350마력, 최대 54.0㎏·m의 힘을 내는 심장이다. 자동 8단 변속기에 사륜구동과 20인치 타이어를 적용한 연료효율은 복합 리터당 8.4㎞다.

3.5리터 가솔린 터보는 현대차그룹이 자신있게 선보이는 신형 파워트레인이다. 엔진 진동을 상쇄하는 ‘CPA 토크 컨버터’, 터보 차저 응답성을 높여주는 ‘수냉식 인터쿨러’, 다중 분사(MPi)와 직분사(GDi) 방식을 결합한 ‘듀얼 퓨얼 인젝션 시스템’, 예열과 냉각을 최적화한 ‘통합 열관리 시스템’, 실린더 정중앙에 연료를 분사해 성능을 높인 ‘센터 인젝션' 등 신기술을 대거 탑재했다.

고성능 가솔린 터보는 어떤 구간에서든지 여유를 잃지 않는다. 고속 안정성도 높아 의도치 않게 과속하지 않을지 걱정해야할 정도다. 바쁜 업무 속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하길 원하는 비즈니스맨들의 소구를 그대로 구현한 듯한 느낌이다.

흡차음 유리와 방음재로 철저하게 차를 두른 덕분에 최고 수준의 실내 정숙성을 구현했다. 여기에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신기술도 슬쩍 얹었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을 통해 도로 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서스펜션을 미리 제어해 상하 움직임과 충격을 줄이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다.

수입차와 정면승부 선언한 G80
국산 대표 고급세단의 승부수 통할까

디자인과 성능, 상품성과 가격 모두 수입 고급 세단을 정조준했다. 국산차라고 해서 수입차보다 싸지 않아도 경쟁할만하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코로나19로 불안한 시기에 공개 첫날 2만2000대 이상 계약이 몰렸다고 한다. 초기 흥행은 대성공이라는 이야기다. 높아진 상품성을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 제고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제네시스 G80 3.5리터 가솔린 터보는 5907만원부터 시작한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