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법조인 후보들
기술계 출신은 ⅕ 수준에 불과
4차산업시대 걸맞은 입법기관 가능?
법조인 출신도 미래 식견 보고 골라야

21대 국회에도 법조인 쏠림현상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속단은 이르지만 후보 수와 선거 양상을 볼 때 법조인 당선 비중이 상당할 것이란 예측이다.

기술산업계는 벌써부터 우려다. 코로나19 후 경제 회복기 4차산업 도래와 함께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를 먹고 산다’는 법조인이 주도하는 국회가 발빠른 법 개정으로 산업계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자료 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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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IT조선이 각계 자료를 파악한 결과, 21대 총선에서도 법조인 출신 후보는 넘쳐나는 반면 정보통신기술(ICT)·과학기술·벤처 등 기술산업계 인사는 태부족이다.

한국변호사협회가 이날 발표한 자료를 보면 법조인은 전체 후보자의 8.2%에 달하는 117명이다. 지역구 102명, 비례대표 15명이다.

기술산업계 출신 후보는 법조인 후보의 4분의 1도 안되는 20여명대 초반에 그친다. 빅2 여야인 더불어민주당(이하 위성정당 포함)과 미래통합당이 각각 9~10명선이다. 명실상부하게 이 분야 전문가라고 할 인사를 추려내면 숫자는 더욱 준다. 확실한 이익집단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 당선 가능성도 다른 분야에 비해 낮은 편이다.

빈약한 기술계 출신 후보들

민주당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차관 출신인 유영민 후보와 변재일 후보를 비롯해 게임업체 웹젠 창업주인 김병관 후보가 대표적인 기술계 인사다. 삼성전자 출신 양향자 전 민주당 최고위원, 네이버 부사장 출신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김학민 전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등도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이경수 전 국제핵융합실험로 국제기구 부총장 등도 출마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과학기술부장관을 역임한 김영환 후보, LG종합기술원 출신 박용호 후보, 공대 출신으로 SK그룹에서 30년간 재직한 이창성 후보 등이 포함됐다. 여성벤처협회장 출신인 이영 테르텐 대표,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 박대성 페이스북 한국일본 대외정책부사장, 김영식 금오공대 교수, 김재섭 레이터 최고운영책임, 유경준 전 통계청장 등도 21대 국회의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빅2 여야를 제외하면 숫자는 확 준다. 대리게임으로 논란이 된 게임 BJ 출신이자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 출신 류호정 정의당 후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비상임이사와 NCS미디어 대표인 위성진 국민의당 후보, 포스코 ICT기술전략그룹책임연구원 출신인 최혜림 우리공화당 후보 정도다.

왜 기술계 출신 국회 등원 목소리 높나

"절망적이다."
한글과컴퓨터 대표 출신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전하진 시티플랜(SiTi Plan) 대표가 기술계 출신 국회의원 후보 태부족에 대해 던진 말이다. 전 대표는 "법조인 출신이 4차산업혁명시대 거버넌스를 만든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마치 축구를 모르는 사람에게 축구 해설을 맡기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산업계는 법조인이 국회를 주도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다. 새로운 혁신을 위해서는 국회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맡는 입법기관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에 종속된다면 변화 흐름을 쫓아갈 수 없다는 우려다.

./자료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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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업계 출신 모 비례대표 후보는 "표에 포커스를 두다보니 정치적 색깔이 약한 과학계나 ICT업계가 배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국가비전 수립 등 장기적 안목 차원에서 ICT업계 배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성준 차차크리에이션 대표도 "20대 국회에 모빌리티 플랫폼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준 의원들이 일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기득권의 벽에 한계를 실감했다"며 "타다 사태 이후 모빌리티 플랫폼이 성장 동력을 얻으려면 21대 국회에서 변화가 필요한데 (법조인이 주도하는) 현 상황에선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모빌리티업계는 물론 벤처업계는 타다금지법 통과를 계기로 미래를 혼란스러워한다.

물론 출신만 갖고 재단할 수는 없다. 법조인 출신이라도 기술 트렌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기술계 출신이라도 꼭 미래 비전과 통찰력이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확률적으로 기술계 출신이 법조인 출신보다 미래를 더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배우고 경험한 것은 물론 기본 성향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법조인은 과거 일어난 일에 대한 시시비비를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기존 법규에 기반해 접근한다. 문제를 발견하고 처벌을 무는 것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거나 문제 해결 능력에 아무래도 약점을 보일 수 있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법조인 출신이 더 많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의회 경우 로스쿨 출신이 70%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법조인을 똑같이 봐선 곤란하다.

미국 법조계는 판례와 공판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민사 소송에 법조인들이 몰린다. 민사소송의 최대 고객은 기업이다. 이 때문에 미국 법조계는 판검사보다 변호사를 선호한다. 전문 분야에서 문제 해결에 익숙한 편이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이다. 기술계 출신 국회의원의 법률 지식이 법조인에 비해 부족한 것은 큰 약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보다 현재나 미래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지금은 4차산업혁명시대다. 기존 법과 제도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문제를 깨닫는 것부터 해결 방법을 찾는 것까지 기술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 많다. 현 선거판을 보면 21대 국회도 미래보다 과거에 더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

법조인 후보 수가 20대 127명(11.6%)에서 21대 117명(8.2%)로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균형을 이루려면 비법조인, 특히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사의 국회 진출이 더 활발할 필요가 있다. 법조인 출신 중에도 그대로 미래 식견이 더 있는 인물이 국회에 가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 식견 여부를 유권자들이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률자문사 대표를 겸하는 모 스타트업 대표는 "국회를 원로원으로 생각하는 성공한 판검사 출신 후보보다 우리 산업 변화를 책임감 있게 바라보는 법조인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표를 행사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모바일&모빌리티팀 j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