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 암호화폐 업계가 주춤한다. 그 틈을 타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한국 시장에 조용히 진출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KR’을 설립하고 원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 ‘BKRW’을 출시했다. 한국 암호화폐 업계가 긴장한 이유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바이낸스 행보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내다본다. 이곳 저곳에서 잡음이 들리며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바이낸스 미디움 갈무리
./바이낸스 미디움 갈무리
바이낸스는 글로벌 암호화폐 업계에서 인지도 높은 거래소다. 마진 거래와 스테이블코인 시장, OTC(장외거래) 트레이딩 등 암호화폐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꾸려가기 때문이다. 또 대규모 M&A를 통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바이낸스가 최근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또 ‘바이낸스KR’ 거래소는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

BKRW 미끼로 "투자자, 드루와"…과장된 마케팅에 위태위태

바이낸스는 글로벌 거래소라는 명성에 비해 부실한 준비성, 불안한 서비스에 투자자 실망감이 높다.

실망감을 높인 이유는 우선 원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BKRW(바이낸스 KRW) 때문이다.

당초 창펑 자오 바이낸스 CEO는 3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바이낸스는 원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BKRW’를 발행한다"며 "김치 프리미엄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가 외국 시장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가격 차이 때문에 외국 거래소에서 코인을 구매한 뒤 우리나라 거래소에서 판매하는 행위도 등장한다. 같은 상품이지만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달라 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창펑 자오 CEO는 김치 프리미엄을 없앨 수 있는 강한 무기는 원화 가치가 고정된 원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 BKRW가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KRW를 바이낸스같은 해외 거래소로 전송해 암호화폐를 구매하면 국내 거래소를 통할 필요없이 암호화폐를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우리나라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과 바이낸스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감 그리고 세계 최대 거래소와 오더북을 공유한다는 사실 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BKRW는 계획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현재 BKRW는 바이낸스KR에서 바이낸스 전송이 지원되지 않는다. 바이낸스 내에서도 지갑 간 BKRW 전송이 지원되지 않는다. 오더북 공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이낸스KR 측은 "내부 정책으로 당장은 지갑간 BKBW 이동을 지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바이낸스KR이 규제 해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 거래소 안에서만 사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바이낸스는 BKRW 백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업계일각에서는 약관을 통해 BKRW가 스테이블 코인이 아니라 원화와 1대1 교환 가치를 그 누구도 보증해주지 않는 포인트에 가깝다는 사실만 지레짐작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사실상 BKRW는 한국에 묶인 원화 포인트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 암호화폐를 더 싼 값에 사기 위해 몰렸던 투자자는 국내 거래소로 다시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10일 오후 기준 바이낸스KR에서 BKRW 거래량은 미국 스테이블코인인 USDT와 비교해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시중은행과 합의 無…위험한 벌집계좌

바이낸스KR은 금융 규제 측면에서도 위태위태한 행보를 이어간다. 은행 측과 충분한 협의 없이 법인용 계좌(벌집계좌)를 열고 거래소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갑’으로 통하는 한국 암호화폐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바이낸스KR에 따르면 거래소는 현재 우리은행 법인용 계좌를 사용하고 있다. 실명인증계좌 형태는 아니다.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가 고객 원화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체 법인계좌인 일명 ‘벌집계좌’ 용도로 사용 중이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우리은행 측은 이 계좌가 거래소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계좌 주인으로 등록된 인물이 당시 암호화폐 사업자로 등록된 것이 확인되지 않았을 뿐더러 계좌 개설 시점 또한 거래소 오픈 시기와 맞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이 바이낸스KR 계좌 사용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거래소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신뢰 형성이 되지 않은 회사와 인연을 맺을 이유가 없다"며 "계좌 개설 시 용도와 다른 사업을 진행한다는 게 실사를 통해 밝혀지면 거래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미숙한 운영이다. 벌집계좌를 활용한 입금 절차에서 오입금으로 인한 문제가 잇따라 불거진다. 바이낸스 거래소를 이용했던 사용자 사이에서는 "사이트 입금 반영에 짧게는 몇십분에서 몇시간 이상 소요된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 다른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은행과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채 한국에서 암호화폐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벌집계좌가 통상 문제되는 것은 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며 "자칫 잘못했다가는 은행이 거래소의 자금세탁 등 위험성을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바이낸스KR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바이낸스KR 관계자는 "은행에 취해야 할 조치 등을 다 했다"며 "문제될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