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차를 맞는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1주일에 5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리진 시인의 시선집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창작과비평사, 1999)를 골랐습니다. 이 낯선 시인을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번역한 이윤기 선생의 글에서 알게 되어 소개합니다. 1996년 한국에서 발간된 《리진 서정시집》(생각의 나무)을 접하고 ‘울며 웃으며 단숨에’ 읽었다는 이윤기 선생의 글을 통해 리진 시인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 주

이윤기는 에세이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왼쪽) 중 ‘늙은 시인의 눈물’이라는 글에서 리진 시인에 대해 얘기하고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접한 《리진 서정시집》은 1996년 한국에서 펴낸 책이고, 위 오른쪽 사진의 책은 리진 시인이 1989년에 알마아타에서 낸 시선집 《해돌이》다.
이윤기는 에세이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왼쪽) 중 ‘늙은 시인의 눈물’이라는 글에서 리진 시인에 대해 얘기하고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접한 《리진 서정시집》은 1996년 한국에서 펴낸 책이고, 위 오른쪽 사진의 책은 리진 시인이 1989년에 알마아타에서 낸 시선집 《해돌이》다.
이윤기 ‘늙은 시인의 눈물’ 중 (글자수 872, 공백 제외 649)

나는 현대시를 잘 읽지 못한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시인의 잘못은 아니다. 현대시를 읽을 때마다, 독자에 견주어 시인의 생각이 너무 깊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바로 이 때문에 나 같은 독자는 시인의 행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현대시를 기피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내가 최근에 한 시집을,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읽었다. 300여 수를 담아서 무려 580쪽에 이르는 그 시집, 《리진 서정시집》을 나는 단숨에, 식음절(食飮絶)하고 읽었다. 울면서 웃으면서 읽었다. 나는 세인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한 채 절판되어버린 이 시집의 존재를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유혹을 누를 길이 없다. 이 시집을 아는 독자가 많아지게 하는 일이, 근 반세기 동안이나 타향을 떠돌다 작고한 한 늙은 시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겠다, 싶어서 이 시집에 나오는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싶다.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이 있겠지만, 그 정도는 무릅쓸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략, 이하 ‘나무를 찍다가’ 전편)

나무를 찍다가 / 리진

그는 난생 처음
한 아름 거의 되는 나무를
찍어 눕혔는데
그 줄기 가로타고 땀을 들이며
별 궁리없이
송진 냄새 끈끈한 그루터기의
해돌이를 세었더니
쓰러진 가문비와 그는
공교롭게도
동갑이었다
한 나이였다

누가 심었을까
이 나무는?
혹은 저절로 자랐을까?
자라오며 이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하였을까?
얼마나 더 자랐을까
이 나무는? … 꼬리 물고 떠오른 궁리궁리는
마침내 그의 가슴속에서
소리 없는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나무를 심자!

그 외침 속에 그는
자기도 몰래
삶에 대한 자기의
모든 사랑
모든 애수를
부어 넣었다.
자기가 심지 않은 나무를
찍어 쓰듯이
반생도 더 살아 오지 않았는지
갈피없이 더듬으면서
소리없이 거듭 외쳤다.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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