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O를 두자] ①한국 기업 '컨트롤타워'가 없다
[CDO를 두자] ②디지털 전환은 선택 아닌 필수
올해 초 산업계 리더들 입에서 나온 핵심 키워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다. 한화와 롯데, LG, SK 등 그룹 계열사 임원과 오너들은 신년사에서 앞다퉈 디지털 전환을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이 전 업계 생존의 핵심 열쇠로 꼽힌 탓이다.
곧이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비대면 문화 등 뉴노멀(새로운 표준)을 앞당겼다. 또 장기화는 디지털 전환을 강제화한다.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가 디지털 전환에 얼마나 대비를 해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작용했다.
집 안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홈코노미(home+economy), 물리적 거리두기 습관의 유지 등이 있지만 대표적인 건 재택근무다. 재택 근무를 경험한 기업은 새로운 업무 형태의 도입을 준비하며 디지털 전환에 가까워진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일시적이던 재택 및 유연 근무가 새로운 업무 시스템으로 자리잡는 셈이다.
가장 큰 불만은 떨어지는 생산성이다. 특히 온라인 업무에 대한 한계와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다.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일할 때 일부 중요 파일은 열람이 금지된 경우가 있어 업무 진행에 한계가 있는 식이다. 온라인 회의는 참여자가 많아지면 시간은 늘고 집중력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온라인 회의는 의사소통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디지털 전환보다 디지털 성숙도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디지털 전환을 시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보다 ‘디지털 성숙도(Digital Maturity)’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성숙도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자사의 디지털 전환 단계를 살피고 중·장기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성숙도는 기업에 기술을 적용해 경쟁력을 선도하도록 기업 문화와 조직 구조, 인력, 업무 수행 등을 조율하는 수준을 말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단계별로 로드맵을 그렸을 때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지 알려주는 지표라고 이해하면 쉽다.
디지털 마케팅 회사인 센터라인 디지털(Centerline Digital)의 크리스틴 파워스 고객 서비스 부사장은 "기업별로 디지털 전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며 "용어의 모호함이 내부 조직 안에서 오해를 빚어내기도 하는 만큼 디지털 전환보다 디지털 성숙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韓 디지털 성숙도, 글로벌 평균 대비 낮아
디지털 성숙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평가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4단계, 또 어떤 곳은 5단계로 나눠 디지털 성숙도를 평가한다. 다만 한국 기업의 디지털 성숙도가 글로벌보다 뒤처진다는 것은 업계 공통 의견이다.
2019년 1월 델 테크놀로지스·인텔이 내놓은 디지털 전환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5단계 디지털 성숙도에서 유독 최하위 비중이 컸다. 디지털 전환 계획이 없는 5그룹(22%) 비율이 글로벌 평균(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디지털 전환을 완료했거나 상당 수준 달성한 1그룹(4%)과 2그룹(18%)이 글로벌 평균을 상회하는 것과 다르다.
한국 기업이 느끼는 자사의 디지털 성숙도는 전체 42개 국가 중 싱가포르와 공동 37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디지털 성숙도를 가장 낮게 평가한 국가는 일본이다.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도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조사에 포함된 14개 국가 중 한국은 5위를 기록했다. 얼핏 상위권 국가로 읽힐 수 있으나 싱가포르(1위), 일본(2위)보다 뒤처진 결과다. 뒤로는 중국(6위)을 제외하면 인도(9위), 말레이시아(10위), 태국(11위) 등 동남아 국가가 다수다.
이같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기업은 디지털 성숙도를 높이고자 사이버 보안에 투자했다. 향후 3년 이내 투자 계획에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1순위로 사이버보안이 꼽혔다. 중소기업의 경우 클라우드에 이어 보안이 2순위였다. 그밖에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도 국경을 가리지 않는 투자 분야였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조직문화 개선·외부 수혈도 방법
다수의 시장조사 업체는 디지털 성숙도를 높이는 일에 기업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성숙도를 높이는 일이 곧 기업 생존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매출 등에서 성과가 나타나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딜로이트는 2019년 6월 보고서를 내놓으며 디지털 성숙도가 높은 조직의 절반이 업계 평균보다 순이익률과 매출이 높았다고 밝혔다. 특히 매출 증가율에서 3배가 더 높다는 설명이다. IDC는 디지털 성숙도가 낮은 기업은 경쟁 구도상에서 점점 더 소규모 시장으로 밀려나는 추세라고 짚었다.
디지털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마다 디지털화 수준을 명확히 판단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이 나온다. 동종 업계나 참고 조직과 비교하면서 목표 수준을 설정하는 등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요지다.
디지털 성숙도 지표를 개발해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투이컨설팅 정소영 이사는 "기업의 사업 영역을 6가지로 나눠 5단계의 디지털 성숙도를 분석한다"며 "7점 척도의 총 120개 문항으로 분석해 디지털 방향성을 살핀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기술을 내부에서 조달할 수 없다면 외부 협약(파트너십)이나 인수합병(M&A)도 성숙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부족한 내부 인력을 보완하는 일이기도 하다.
딜로이트는 디지털 성숙도가 높은 회사의 80%가 외부 파트너와 협력해 디지털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맥킨지는 디지털 성숙도를 높이고자 하는 기업들이 3년간 평균 2건의 M&A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노보텔, 이비스 등을 소유한 프랑스 호텔 체인 아코르는 M&A로 디지털 성숙도를 높인 대표 사례다. 이 회사는 디지털 서비스에 집중하고자 보유하던 호텔 자산의 절반을 매각했다. 이후 12개 디지털 기업을 인수해 구글과 사업 제휴를 맺었다. 디지털 서비스로 예약과 렌털 등을 제공하면서 연 50%에 달하는 성장을 이뤘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