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구보 박태원(1909~1986)의 대표작 《천변풍경》과 또다른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1930년대 서울의 풍속과 세태가 파노라마 사진기로 찍듯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보의 외손자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소위 ‘서울사투리’를 떠올리며 필사해 보시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30년대 종로 풍경. 글에 등장하는 ‘화신상회’ 앞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화신상회, 즉 화신백화점(1931~1987)은 일제 강점기에 생긴 최초의, 유일한 한국자본 백화점이자 근대건축 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최초의 서양식 상업 건물로, 서울 종로구 공평동, 현재 종로타워 자리에 있었다.
1930년대 종로 풍경. 글에 등장하는 ‘화신상회’ 앞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화신상회, 즉 화신백화점(1931~1987)은 일제 강점기에 생긴 최초의, 유일한 한국자본 백화점이자 근대건축 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최초의 서양식 상업 건물로, 서울 종로구 공평동, 현재 종로타워 자리에 있었다.
천변풍경 ③ (글자수 757, 공백 제외 576)

소년은, 드디어, 그렇게도 동경하여 마지않던 서울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청량리를 들어서서 질펀한 거리를 달리는 승합자동차의 창 너머로, 소년이 우선 본 것은 전차라는 물건이었다. 시골 ‘가평’서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이, 그야, 전차 한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지금 곧, 우선 저 전차에 한번 올라타 보았으면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감격을 일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동관 앞 자동차부에서 차를 내리자, 그대로 그를 이끌어 종로로 향한다.

소년은 한길 한복판을 거의 쉴 사이 없이 달리는 전차에 가, 신기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싶게 올라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머리에, 등덜미에, 잠깐 동안 부러움 가득한 눈을 주었다.
"아버지. 우린, 전차, 안 타요?"
"아, 바루 저긴데, 전찬 뭣 허러 타니?"
(중략)

몇 번인가 아버지의 모양을 군중 속에 잃어버릴 뻔하다가는 찾아내고, 찾아내고 한 소년은, 종로 네거리 굉대한 건물 앞에 이르러, 마침내,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예가 무슨 집이에요, 아버지."
"저, 화신 상…… 화신 상이란 데야."
"화신 상요? 그래, 아무나 들어가요?"
"그럼. 아무나 들어가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지금 그 안에 들어갈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는 겨우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나머지에, ‘마소 새끼는 시골로, 사람 새끼는 서울로’의 속담을 그대로 좇아, 아직 나이 어린 자식의 몸 위에 천만 가지 불안을 품었으면서도, ‘자식 하나,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이내 그의 손을 잡고 ‘한성’으로 올라온 것이다.

* 단어 풀이
- 동관 : 아마도 당시 화신상회를 두고 이야기한 듯. 서울에서 가장 번화가 중심이던 이곳 부근에 차부(車部)가 있었다. 동관에 이어 1937년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처음 도입된 서관이 완공되었으므로, 소설의 배경인 1936년 당시는 한창 공사 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굉대한 : 宏大한, 어마어마하게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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