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C바이브 VR간담회 참석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실감
비용 등 해결 과제는 많아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코로나 19의 여파로 기업들이 주관하는 각종 오프라인 간담회, 콘퍼런스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외부 행사가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컨퍼런스콜이나 화상 미팅, 웨비나(웹 세미나), 스트리밍 방송 등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기존 오프라인 행사만 못하다는 평도 적지 않게 나온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안 중 하나로 가상현실(VR) 기술이 꼽힌다. 가상의 공간에서 3D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입체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 2차원에 국한된 기존 온라인 협업 솔루션에 없는 ‘현장감’까지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HTC 바이브 VR 협업 앱 ‘바이브 싱크’를 이용해 개최한 국내 첫 VR 간담회의 진행 현장 모습 / 최용석 기자
HTC 바이브 VR 협업 앱 ‘바이브 싱크’를 이용해 개최한 국내 첫 VR 간담회의 진행 현장 모습 / 최용석 기자
HTC 바이브(VIVE)는 최근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자사 신제품 출시 미디어 간담회를 VR로 진행했다. 자사의 VR 헤드셋(HMD) 바이브 시리즈와 자체 개발한 가상 협업 솔루션 ‘바이브 싱크(VIVE Sync)’를 활용해 본격적인 ‘가상현실 간담회’를 구현했다. 기자도 직접 참여해 VR에 기반한 협업 솔루션의 가능성을 확인해봤다.

준비할 것이 많은 VR 협업

VR 협업을 위해서는 6DOF를 지원하고 전용 컨트롤러를 갖춘 고성능 VR 헤드셋이 필요하다. 바이브 코스모스 엘리트 VR헤드셋 / HTC 바이브
VR 협업을 위해서는 6DOF를 지원하고 전용 컨트롤러를 갖춘 고성능 VR 헤드셋이 필요하다. 바이브 코스모스 엘리트 VR헤드셋 / HTC 바이브
몸만 가면 그만인 기존의 오프라인 행사와 달리, VR 간담회 참가자는 준비할 것이 많다. 우선 VR 장비가 필요하다. 회사 측은 간담회 진행을 위한 VR 장비를 참가자들에게 대여했다. 기자는 이미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바이브 헤드셋을 보유하고 있어서 장비 대여 없이 바로 참여할 수 있었다.

본인의 3D 아바타도 만들어야 한다. HTC 바이브가 간담회에 사용한 ‘바이브 싱크’는 본인의 아바타 제작을 위한 스마트폰 앱을 제공한다. 폰 카메라로 얼굴 사진을 찍으니 자동으로 가장 유사한 형태의 아바타 얼굴을 생성하고, 실제 사진의 일부 텍스처를 합성해 실물과 비슷한 아바타를 만들어낸다. 나중에 전체적인 윤곽과 모양, 눈, 코, 입, 눈썹 등의 세부적인 수정도 가능하다. 물론, 급한 경우 미리 제공하는 샘플을 사용한 단순 아바타도 만들 수 있다.

VR 간담회 참석을 위해 전용 앱으로 3D 아바타를 만드는 모습 / 최용석 기자
VR 간담회 참석을 위해 전용 앱으로 3D 아바타를 만드는 모습 / 최용석 기자
시간에 맞춰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바이브 싱크 VR앱을 실행한 다음, 미리 전달받은 미팅룸 ID와 비밀번호를 통해 회사 측이 마련한 VR 발표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처럼, 바다를 뒤에 둔 중앙의 무대와 이를 둘러싼 반원형 계단식 객석으로 구성된 발표장이다.

다른 참석자들도 속속 입장하고, 각자 객석에 자리를 잡자 VR 간담회가 시작됐다. HTC 바이브가 7일부터 판매를 시작하는 최신 모듈형 VR HMD ‘바이브 코스모스 엘리트(VIVE Cosmos Elite)출시 발표 및 제품 소개가 이어졌다.

현실과 혼동할 정도의 생생한 현장감과 몰입감

가상 간담회지만 분위기와 현장감은 여느 오프라인 행사에 못지않다. 참석자들의 3D 아바타가 게임에서나 볼법한 뭉뚱그린 데포르메(déformer, 대상을 간략화해 표현하는 기법) 캐릭터가 아닌, 실제 본인과 비슷한 얼굴과 사실적인 체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참가자들이 착용한 VR 헤드셋과 컨트롤러의 움직임에 맞춰 3D 아바타도 실제 사람처럼 움직인다. 발언을 하면 아바타의 입술까지 그에 맞춰 움직인다. 주위 다른 참석자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인기척까지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이브 싱크’로 구현된 VR 간담회 발표장의 사전 준비 및 테스트 중인 모습 / 최용석 기자
‘바이브 싱크’로 구현된 VR 간담회 발표장의 사전 준비 및 테스트 중인 모습 / 최용석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3D 오디오 기술이 적용되어 멀리 떨어진 사회자와 무대에서 발표하는 발표자의 음성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들린다. 어디서 누가 발표하고 있는지 소리만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발표자의 목소리를 듣기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헤드셋 내장 마이크나 별도 외부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 대화도 가능하다.

간담회에는 발표자와 사회자, 통역사까지 포함해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시에 참여했다. 특히 주요 발표자들은 한국이 아닌 대만에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에 지장이 될 정도의 지연이나 끊김, 버벅거림 등이 별로 없던 것도 ‘현실감’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가능성’ 보이지만 해결할 숙제도 많아

필기, 화면캡처, 드로잉 등을 위한 바이브 싱크의 가상현실 내 인터페이스 / 최용석 기자
필기, 화면캡처, 드로잉 등을 위한 바이브 싱크의 가상현실 내 인터페이스 / 최용석 기자
첫 VR 간담회는 확실히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VR 협업이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먼저 비용 문제다. VR 협업을 위해서는 HTC 바이브 시리즈처럼 6 DOF(6 자유도)를 지원하고 전용 컨트롤러를 갖춘 고성능의 VR 헤드셋이 필수다. 이러한 제품들의 가격은 최소 수십만 원 대에서 최대 수백만 원 대에 달한다. ‘바이브 포커스(VIVE Focus)’처럼 단독으로 작동하는 VR 헤드셋이 아니라면 헤드셋 구동을 위한 고사양 고성능 PC도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추가 도입 비용이 발생한다.

실제로 비용 문제는 처음 상용 제품이 출시된 2016년 4월 이후 지금까지도 VR 시장 성장과 확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다. 스마트폰을 장착해 작동하는 저가 간이형 VR 헤드셋의 경우, 화질도 훨씬 떨어지는 데다 가상현실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 및 능동적인 행동이 쉽지 않은 특성상 ‘참관’만 가능한 수준이다.

제품 세부 외형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발표장 내에 ‘바이브 코스모스 엘리트’의 3D 렌더링 이미지를 불러온 모습 / 최용석 기자
제품 세부 외형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발표장 내에 ‘바이브 코스모스 엘리트’의 3D 렌더링 이미지를 불러온 모습 / 최용석 기자
둘째, VR 협업에 최적화된 전용 컨트롤러 및 VR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이다. 이날 HTC 바이브가 VR 간담회에 사용한 VR 협업 앱 ‘바이브 싱크’는 가상현실 내에서 원하는 내용을 직접 기록할 수 있는 필기하는 노트 기능, 큰 화면으로 보이는 발표 자료를 따로 볼 수 있는 개인 스크린과 여기에 따로 강조선 등을 표시할 수 있는 그리기 기능, 원하는 장면을 캡처하는 카메라, 가상 레이저 포인터 등 기본적인 협업 도구를 제공한다.

하지만, 필기 기능은 글자의 자모를 하나하나 포인터로 찍어야 하는 가상 키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현실보다 타이핑이 느리고, 그리기 기능도 부피가 큰 기존 VR 컨트롤러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 만큼 정교한 드로잉이 어렵다. 처음 VR 헤드셋이 상용화된 이후부터 꾸준히 지적됐던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VR 협업 상황에서는 더욱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셋째, VR 협업의 준비 작업도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단순 발표나 미팅인 경우는 간단하게 프레젠테이션용 자료만 있어도 진행할 수 있지만, VR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3D 렌더링 자료는 아무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실제 기업에서 업무에 활용할 만한 고품질의 3D 렌더링 콘텐츠는 그것만을 따로 제작하는 별도의 전문가가 필요해 보인다.

VR 간담회에서 발표자와 참가자들이 음성 대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모습 / 최용석 기자
VR 간담회에서 발표자와 참가자들이 음성 대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모습 / 최용석 기자
그 외에 ▲헤드셋과 컨트롤러만으로 구현한 아바타의 다소 어색한 움직임 ▲참가자들의 설치 및 조작 미숙으로 인한 오류 ▲원활한 진행 및 트러블 슈팅을 위한 전담 관리자 확보 ▲타사 VR 헤드셋 지원 여부 등의 문제도 있었다. 다만 앞선 세 가지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편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바이브 싱크’도 아직 개발이 한창인 베타 버전이다. 실제로 호환성 문제의 경우 현재 바이브 시리즈 VR 헤드셋만 지원하지만, 향후 소스 공개 및 개발도구 배포 등을 통해 다른 VR 헤드셋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VR 협업 솔루션의 장래는 밝아 보인다. 발전 및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기존의 오프라인 협업에 비해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는 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협업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제조, 헬스케어, 교육,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머무는 VR 관련 산업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셈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