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각광받은 원격의료, 한국판 뉴딜서 사실상 빠져
그 사이 중국은 원격의료 건강보험 적용대상 확대
AI·5G 등 ICT 추월에 이마저도 위기
업계 "해묵은 소모전 그만…부작용 줄이기 집중해야"

정부가 코로나19로 가장 주목받은 비대면 의료 서비스(원격의료)를 한국판 뉴딜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업계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제도화를 통한 전면 확대가 아닌 시범 사업 일부를 늘리는 방향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해묵은 원격의료 허용 여부 논쟁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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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의료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한국판 뉴딜’ 청사진을 확정했다. 뉴딜은 카드 게임에서 카드를 바꿔 새로 친다는 의미로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해 정부 주도 아래 생산을 통제하고 소비를 끌어 올리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한국판 뉴딜은 정부가 대규모 국가 산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창출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혁신 성장을 함께 준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2~3년 간 국민 체감 성과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정부는 3대 프로젝트와 세부 10개 중점 과제를 구성했다.

3대 프로젝트는 5G 네트워크 고도화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충 등을 담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SOC) 디지털화 등이 핵심이다. 10대 중점 과제는 ▲데이터 전(全)주기 인프라 강화 ▲데이터 수집·활용 확대 ▲5G 인프라 조기 구축 ▲5G+ 융복합 사업 촉진 ▲AI 데이터·인프라 확충 ▲전산업으로 AI 융합 확산 ▲비대면 서비스 확산 기반 조성 ▲클라우드 및 사이버 안전망 강화 ▲노후 SOC디지털화 ▲디지털 물류 서비스 체계 구축 등이다.

코로나19로 주목받은 원격의료…해묵은 소모전, 다시 수면 위로

이 중 원격의료는 기존 시범 사업을 일부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한국판 뉴딜 비대면 산업 육성 계획이 원격의료 제도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며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대책은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이번에 육성하는 비대면 의료산업은 기존에 실시된 의료 취약계층 원격 상담·모니터링과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추가된 전화 상담, 처방 등에 인프라를 보강하는 내용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이어 "원격진료·처방 등 전문적 의료행위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적정 수가 개발, 환자 보호 방안, 상급병원 쏠림 해소 등 보완장치와 함께 검토할 과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처럼 선을 그은 이유는 해묵은 원격의료 논쟁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국 원격의료는 의료계 반대에 부딪히고 규제에 가로막혀 활성화되지 못했다.

앞서 우리나라는 2013년 12월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원격의료 논란이 본격화됐다. 당시 보건의료계는 ▲국민 건강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개인정보 보호가 어려울 뿐더러 ▲대형병원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원격의료를 거세게 반대했다. 결국 이 개정안은 폐기됐다.

파이 키우기 나선 中…코로나19로 봄날

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소극적인 태도가 우리나라 원격의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국이 이해관계자 간 의견 조율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중국은 원격의료 지원 정책을 잇달아 쏟아내는 등 산업에 힘을 싣는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도 먼저 한시적으로나마 원격의료를 허용했지만, 중국에 추월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확산 대응 차원에서 원격의료 건강보험(사회보장체계)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중국 국가의료보험국은 3월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코로나19 방역 인터넷플러스 의료보험 서비스 추진에 관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온라인 의료 서비스로 시행되는 의료비를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인터넷플러스는 인터넷과 기존 산업을 융합해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수익모델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중국 정부가 2014년부터 시행한 정책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중국 정부는 의료산업도 예외 없이 온라인과 융합을 꾀해 원격진료와 전문의약품 배송 등 다양한 의료모델을 창출해 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중국은 이번 정책으로 오프라인 의료기관과 원격의료 서비스에 동일한 보험을 적용한다고 밝힌 셈이다"라며 "중국은 2018년부터 의료 인공지능(AI) 인허가제를 도입하고 모든 의료기관 진료기록을 클라우드로 관리하는 등 온라인과 의료산업 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로나19로 중국 원격의료 산업이 꽃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로 원격의료 서서히 안착시켜야"

특히 업계는 코로나19로 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전화상담)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효과를 톡톡히 본 만큼 안착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묵은 소모전은 그만하고 이해관계자 간 조율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원격의료가 허용된 후 행해진 전화진료는 15만건 이상이다. 이를 경험한 이들의 만족도가 높다. 서울은평성모병원이 2월 23일부터 3월 8일까지 전화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906명) 중 87%가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나군호 연세대 의대 융복합의료기술센터 교수는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개최한 온라인 의료 컨퍼런스에서 "코로나19로 한국에서 전화처방을 통한 사회적 공감이 이뤄졌기 때문에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계속 반대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제는 원격의료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데 집중할 때다"라고 말했다.

송승재 협회장은 "현 의료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심층적인 고찰과 대응 계획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며 "의료인을 포함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정비와 저수가 이슈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체계,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 분담 등 논의해야 할 주제다 많다"고 밝혔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