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 필사감으로는 일제강점기 작가·언론인·수필가·시인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골랐습니다. 1936년 〈모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서사 방식에서 상당량의 묘사를 사용하면서도 그 수준이 높아 필력만으로 한국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듣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이효석은 1940년 젊은 아내와 돌 안 된 막내를 병으로 잃고 어린 자식들(1남 2녀)을 홀로 키우던 중 그 자신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에 걸려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떴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사재를 출연해 '이효석 문학재단'을 설립하여, 짧았지만 뜨거웠던 아버지 이효석의 삶을 기리고 있다. 위는 1938년 무렵의 가족사진.
이효석은 1940년 젊은 아내와 돌 안 된 막내를 병으로 잃고 어린 자식들(1남 2녀)을 홀로 키우던 중 그 자신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에 걸려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떴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사재를 출연해 '이효석 문학재단'을 설립하여, 짧았지만 뜨거웠던 아버지 이효석의 삶을 기리고 있다. 위는 1938년 무렵의 가족사진.
메밀꽃 필 무렵 ④ (글자수 775, 공백 제외 609)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 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랴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중략)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중략)

허 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단어 풀이
- 훗훗이 : 좀 갑갑할 정도로 덥고 후끈하게
- 아둑시니 : 사물을 잘 분간 못하는 눈이 어두운 사람
- 해깝다 : ‘가볍다’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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