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 IP컨설턴트
유경동 IP컨설턴트
미국 IBM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허왕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질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숫적으로 다소 밀리는 양상을 보이긴 하나, 제조라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IBM 보유특허의 양과 질은 지구상 그 어떤 기업도 넘보기 힘든 벽임에 틀림없다. 지난 1992년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특허왕좌를 꿰차고 있는 IBM. 이 업체의 IP 속살을 하나씩 들춰보자.

거침없는 우상향…연 1만건 특허시대 개막 눈앞

매년 5000~6000건 안팎의 특허를 등록해온 IBM은 최근 5년여전부터는 해마다 전년 대비 1000건 내외의 특허를 추가 취득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면, IBM은 2020년 올 한해 등록 특허 연간 1만건 시대를 사상 최초로 열 전망이다.

IBM의 US특허 등록건수 추이/ 미국 특허청(USPTO), WINTELIPS
IBM의 US특허 등록건수 추이/ 미국 특허청(USPTO), WINTELIPS
여기에는 IBM의 경영전략이 숨어있다. 노트북과 메인 서버 등을 끝으로 제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 IBM은 철저히 테크 컨설팅 기반의 ‘지식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첨병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지식재산’(IP), 즉 특허다. IBM은 IP자산을 매각 또는 라이선스로 돌려 자산유동화(Monetizing), 다시 말해 실제 매출을 일으키는데 적극 활용한다.

때문에, 특허권의 취득과 포기에 매우 유연하다. 제조라인 부재가 이 같은 가벼운 몸놀림을 가능케 한다. 어렵게 취득한 특허라도 보유 의미가 없어졌다면, 미련 없이 버린다.

특허는 ‘연차료’라는 관리비용이 매년 눈덩이처럼 붙는다. 아니다 싶으면 없애는 게, 돈 버는 거다. 최근 보유특허수 기준 순위에서 IBM이, 삼성전자에게 다소 밀리는 듯해 보이는 착시효과 역시,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반대로 보면, 그만큼 삼성전자의 IP경영 스타일은 경직돼 있다는 얘기가 된다.

왕중왕은 누구?

특허왕 IBM내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특허킹은 따로 있다. 바로 캥궈 쳉이라는 중국계 연구원이다. 미 일리노이스대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난 2001년 IBM에 입사한 쳉 연구원은, IBM에서만 20년 가까이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지금껏 총 1822건의 특허에 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2위 연구원보다 무려 1000여건이나 많은 특허를 발명해, 단연 독보적이다. 2019년 한 해만도 총 337건의 특허를 발명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다. 미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쳉 수석의 특허는 총 3521건의 타사 특허 심사에 피인용됐고, IBM의 해외 패밀리특허로도 240건이 등재되는 등 질적 측면에서도 우수성을 입증받고 있다.

쳉 수석은 그동안 반도체 관련 개발업무를 맡으면서, 삼성전자나 글로벌파운드리스 등과 공동 연구를 해왔다. 지난 2018년부터는 하드웨어 기반 인공지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 향후 각종 디바이스에 실적용된 AI 특허가 IBM에서 다량 출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캥궈 쳉 IBM 수석연구원
캥궈 쳉 IBM 수석연구원
쳉 수석의 최신 특허 하나를 보자. 2020년 4월 16일, 미 특허청이 공개한 ‘멀티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하드웨어 기반 온칩 패스워드’라는 특허다. 쳉 수석이 단독 발명자로 등재돼 있다.

캥궈 쳉 IBM 수석연구원 출원 특허 내용
캥궈 쳉 IBM 수석연구원 출원 특허 내용
모든 보안은 소프트웨어 방식 보단, 하드웨어 기반이 훨씬 강력한 시큐리티 효과를 발휘한다. 기기에 직접 탑재되는 하드웨어 보안 방식은 1회성 OTP 처럼 유연한 패스워드 관리와 응용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쳉 수석은 이번 특허를 통해 온칩 상에서도 비밀번호 리라이팅(Rewriting)과 멀티유즈(Multi-Use) 등을 가능케 한거다. 향후 각종 IoT 인증과 보안에 획기적인 편의성 증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국인 전직 아이비에머(IBMer)중에는 김지환 현 MIT 부교수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홍익대 재료공학과를 나와 미 UCL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교수는 지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여간 IBM 왓슨연구소에 재직하며 총 187건의 특허를 발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5년부터 MIT 재료공학부에서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김지환 전 IBM 연구원
김지환 전 IBM 연구원
IBM 특허에는 왓슨연구소 등 본사 직원 뿐 아니라, 전세계 54개국 8500여명의 다국적 연구진이 총동원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특허를 발명한 ‘해외 아이비에머’는 새바짓 랙싯(SARBAJIT K. RAKSHIT)이라는 인도IBM 소속 연구원이다. 애플리케이션 아키텍트 분야 전문가인 새바짓 연구원은, 2019년에만 혼자 149건의 특허를 발명해냈다.

새바짓 랙싯 인도IBM 연구원
새바짓 랙싯 인도IBM 연구원
AI, 클라우드, 보안으로 무게중심 이동

단순 하드웨어 관련 특허가 주를 이뤘던 IBM의 초기 주력분야는 최근들어 인공지능(AI)을 비롯해 클라우드, 블록체인, 시큐리티 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9000여건의 등록특허 가운데 AI는 총 1800건에 달했다. 대부분 자연어 처리 관련 기술이었다. 디바이스간 상호작용에 적용 가능한 특허들이다.

클라우드 관련 특허는 지난해 처음 2500건을 넘어섰다. 특히 IBM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주력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장 큰 장애물인 데이터 이관 작업을 보다 손쉽게 하기 위한 기술이다. 공동 포털을 통해 시스템간 상호운용이 가능토록 했다는 게 포인트다.

2019년 한해동안 1400건이 넘는 특허가 등록된 시큐리티 분야는 ‘동종 암호화’ 기술 관련 특허가 주를 이뤘다. 데이터를 사전 해독하지 않고도 그 처리와 조작이 가능토록하는 암호화 체계다. 양자컴퓨터로도 해킹이 불가능해 강력한 보안이 요구되는 재무나 의료, 공공 등의 분야에 널리 적용될 전망이다.

이밖에 블록체인 분야는 투명성과 검증, 보안 기능 강화에 역점을 둔 특허가 다수 등록됐다.
이처럼, IBM의 최신 특허를 하나하나 분석하다보면, 이들의 비즈니스 지향점은 물론, 향후 글로벌 IT시장의 큰 흐름도 읽어낼 수 있다. IBM이 전세계 정보통신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방증이다.

공동출원인을 파악하라

특허는 여러 업체와 함께 ‘공동 출원’이 가능한다. 따라서, 그 관계를 분석해보면, 어떤 업체와 기술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는 향후 기업 매각이나 인수/합병 등을 미리 관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 역할도 한다.

IBM은 주로 반도체 분야에서 공동출원을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 2014년 자사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한 글로벌파운드리즈(GF)와의 협업이 총 444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인피니온, ST마이크론, 지멘스, 삼성전자 등의 순이다. 절대 건수는 많지 않지만, 국방과학연구소를 비롯해 엠텍비젼, 네이버 등 국내 업체들과의 전방위적인 협업 체인이 가동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페이턴트피아
/페이턴트피아
요동치는 글로벌 특허시장

2020년 정초부터 IBM이 외신에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LOT네트워크 신규가입’이라는 깜짝 발표 때문이었다. 사실 한해 전 IBM이 오픈소스 기업 레드햇을 전격 인수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됐었지만, 이렇게 빨리 LOT 가입이 이뤄지리라 보는 전문가들도 예측 못했던 게 사실이다.

LOT네트워크는 NPE, 즉 특허괴물의 소송 공격을 피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2014년 구글 등 미국 IT업체 주도로 결성된 일종의 ‘특허 동맹’이다. 이 네트워크 회원사들끼리는 로열티 받지말고 서로의 특허를 자유롭게 쓰자는 게 LOT의 설립 골자다. 따라서, 제조업 기반 없이 그간 특허 매매나 라이선스로 쏠쏠한 재미를 봐 온 IBM으로서는 LOT 가입 자체가 큰 모험이자 기회다.

LOT 멤버로서 앞으로 펼칠 IBM의 IP비즈니스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IBM의 특허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경동 IP컨설턴트

윕스 전문위원과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 편집장, 전자신문 기자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SERICEO에서 ‘특허로 보는 미래’를 진행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100 △ICT 시사상식 등이 있습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글로벌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의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에 선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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