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간 정보기술(IT) 분야에 몸담아 왔지만 대학 시절에는 컴퓨터 구경도 못 했다. 내가 다닌 대학 전체에 지금의 PC 정도 성능도 안 되는 컴퓨터가 한 대 있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그 당시 초급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 여러 대기업 중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취업 걱정이 없던 시절이다.
나는 앞으로 살아 가려면 컴퓨터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대기업보다 월급도 훨씬 적은 중소기업을 택했다. 이 결정이 IT 분야에 몸을 담게 된 계기다. 컴퓨터회사라고 하지만 사실 컴퓨터를 수입해 팔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는 무역회사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일을 한 덕분에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70년대 은행에 처음 온라인이 도입된 이래 발전을 거듭해 이제 창구가 없는 인터넷은행이 등장했다. 주식은 자동으로 체결된 지 오래다. 모든 거래가 세무당국에 자동으로 취합되어 연말에 세금 신고에 필요한 증명서류들을 거꾸로 국세청 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여권의 발급과 출입국 신고도 가장 편리한 나라가 되었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현금 선호율이 10%에 지나지 않는다.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나아간다. 신용카드를 도입한 지 불과 40년 만에 신용카드 거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모든 예약, 구매, 거래, 지불이 다 인터넷에서 가능하다. 민원 서류를 안방에 앉아 발급 받을 수 있다. 서류가 필요 없는 세상이 다가온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에도 신용카드 사용 기록과 스마트폰 위치 추적 등으로 확진자 동선을 쉽게 파악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지난 40년 동안에 대한민국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정보통신분야에서 일하면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은 것은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다. 다른 분야에서 일한 것보다 미래 세대와 소통할 수 있으며, 앞으로 벌어질 세상을 더 상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1993년에 같이 선출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의 차이는 신체적인 나이 뿐만이 아니라 IT에 대한 이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의 40대의 두 젊은 지도자들은 그 당시 ‘정보초고속도로’ (Information Superhighway)를 주창했다. 그 결과로 오늘 날 미국이 IT 초강대국이 됐다. 지난 대선토론에서 ‘3D 프린터’ 발음을 놓고 논쟁하던 장면이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앞으로의 40년은 IT를 기반으로 지난 40년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다가올 것이다. 그 변화는 진전만 하는 게 아니라 기존 체제의 파괴를 몰고 올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권력 구조의 재편, 과거 청산, 분야별 수정 작업만으로는 이런 거대한 물결에 대처할 수가 없다. 파괴가 쓰나미처럼 밀려 올 것이라는데…
해방 이후의 건국과 군사정권에 의한 국가 재건 과정에서 했던 것처럼 국가 모든 영역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우에 따라 헌법부터 정부조직, 지방 행정조직의 통폐합도 필요할 것이다. 미래 국가를 지탱할 교육, 산업구조, 연구개발, 국토이용, 조달, 감사, 기업과 노동의 형태 등등 다가올 세상에 맞춰야 한다.
지금처럼 벌어지는 갈등을 덮기에 급급해 땜질하는 식으로는 이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최근의 부동산과 비정규직 정책이 미래에 대응한 종합적인 큰 설계 없이 미시적 이슈를 손만 대 분란만 일으킨 좋은 예이다.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거나 이 변화를 수용하는 국가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국가 지도자는 미래에 펼쳐질 세상에 대한 이해와 상상이 있어야 한다. 40년 전에 미국의 지도자들이 했던 것처럼 IT를 기반으로 벌어질 세상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그림이 없이 갈등만 유발하고 있으면 국가는 점점 더 후퇴하기 마련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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