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로 승부수 띄우는제약사
혈장·항체 치료제&약물재창출 연구개발 박차

제약업계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글로벌 제약업계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양분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발 빠른 진단키트 생산을 통해 K바이오 위상을 높인 제약바이오 업계가 치료제로 다시 한번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을 지 관심이 쏠린다.

22일 관련 업계 및 기관에 따르면 제약업계가 혈장·항체 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종식 해결사’로 여겨졌던 기존 약물 효능과 가능성이 모두 제로화됐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고 진행되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은 총 11건이다. 그간 진행된 치료제 임상 16건 중 ▲렘데시비르(3건) ▲칼레트라정·옥시크로린정 ▲할록신정 관련 임상은 연구가 종료된 상태다. 임상이 종료된 약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외면받았다.

‘연내 상용화 각오’ 혈장·항체 치료제 개발 박차

현재 진행하는 치료제 임상 중 새롭게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혈장·항체 치료제다. 연내 상용화 가능성이 거론된다.

혈장치료제는 코로나19 회복기 환자의 혈장을 채혈한 뒤 면역글로불린(항체)을 농축·제재화해 환자에 투여하는 방식의 치료제다. 많은 양의 혈액을 필요로 한다. 대량 생산이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환자들의 혈장을 활용하는 만큼 부작용이 적고 이미 상용화된 동일제제 제품과 작용 기전 및 생산 방법이 같아 개발 속도가 빠르다. 이를 이유로 혈장치료제는 코로나19 치료제 중 시중에 가장 빨리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방역당국은 8월이면 치료제 생산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본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21일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GC녹십자의 혈장치료제 제제 생산 소식을 알리며 "혈장 공여에 총 1039명의 완치자가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실제로 660명의 혈장이 확보된 상태다"라고 밝혔다.

앞서 7월 18일 GC녹십자는 혈장치료제(GC5131A)의 임상시험용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GC녹십자는 이달 말쯤 식약처에 혈장치료제 임상시험을 신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항체치료제 개발도 순항 중이다. 항체치료제는 셀트리온이 2월부터 개발하고 있다. 동물실험에서 페럿(족제비과 동물)과 햄스터에 치료제를 투여한 결과 바이러스가 각각 100분의 1과 2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식약처는 이를 토대로 최근 임상 1상 시험을 승인했다. 셀트리온은 이번 주 안에 임상 1상을 위해 32명 안팎의 건강한 피험자를 대상으로 치료제 투여를 시작한다. 3분기 내 시험을 완료할 계획이다. 임상 2~3상은 경증 및 중등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임상 3상과 정식 허가심사를 마치겠다는 목표다.

셀트리온은 임상 2상 결과가 좋을 경우 긴급사용승인도 고려하고 있다. 9월부터 인천 송도 공장에서 항체치료제 상업생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연내 상용화 가능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서정진 회장은 "규제기관으로부터 제품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생산공장에서 제품이 안정적으로 생산된다는 데이터(생산 설비의 적절성과 유효성 등)를 보여줘야 한다"며 "셀트리온 송도 공장이 1년에 돌리는 배치 수는 280배치 정도인데, 이 중 10배치는 위험부담을 안고라도 개시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임상에서 좋은 효능이 확인되지 않으면 미리 생산한 치료제를 폐기해야 하는만큼, 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재고를 쌓아두겠다는 의미다.

약물재창출도 활발

국내 제약사들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이다. 대부분 이미 다른 질병 치료에 쓰이고 있거나 개발 중인 약물의 용도를 바꿔 새로운 질병 치료제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약물재창출’ 방식을 꾀한다.

대웅제약은 우리 제약사 중 가장 다양한 코로나19 치료제 포트폴리오를 갖춘 곳 중 하나다. 최근 식약처로부터 만성췌장염 치료제 호이스타정(성분명 카모스타트메실산염)의 임상 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고 임상에 진입했다. 경증 또는 중등증의 코로나19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14일간 약물을 투여한다. 위약군 대비 바이러스 소실까지 기간을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다. 올해 9월까지 2상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안으로는 임상 3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대웅제약은 또 세포 자가포식 작용을 활성화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의 코로나19 치료제 DWRX2003(성분명 니클로사마이드)의 임상시험계획(IND)을 필리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상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1상에 돌입했다. 줄기세포 코로나19 치료제는 올해 하반기 안으로 국내에서 임상 2상을 진행한다는 목표다.

종근당은 한국파스퇴르연구소, 한국원자력의학원과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세포 수준에서 자사 혈액항응고제 및 급성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성분명 나파모스타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2상을 진행한다. 나파모스타트는 앞서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진행한 세포배양 실험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가장 강력한 효능을 보였다고 알려진 성분이다. 치료제 효과가 확인되면 종근당은 식약처에 긴급사용승인을 요청한다. 추후 경증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7월 식약처로부터 세린계 단백질가수분해 효소억제제 ‘카모스타트’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2상 승인을 받았다. 회사는 코로나19 경증 및 중등증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부광약품은 B형간염 치료제 ‘레보비르’를 약물재창출 방식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한다. 10월까지 임상 2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일양약품은 기존 항암제의 임상 3상을 러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5월 말 항암제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 3상을 승인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11개 기관이 약 100여명의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하고 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