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을 잘 뜯어보면 공부할 만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데없지만 알아두면 기한 느낌이 드는 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게임 용어 부캐, ‘멀티 페르소나’를 이르는 문화 용어로 확장

부캐라는 말은 게임 이용자에게 익숙하다. 특히 온라인게임에서, 주력해서 키우는 캐릭터를 본캐릭터(본캐), 혹은 주캐릭터(주캐)라고 부른다. 부캐릭터(부캐)는 본캐와 상반되는 개념이다. 본캐 플레이에서 벗어나서 평소에 즐기지 않던 직업이나 스타일로 게임을 즐기고 싶을 때 활용하는 캐릭터가 부캐다.

최근 흥행을 이어가는 ‘부캐’ 그룹 싹쓰리 / MBC
최근 흥행을 이어가는 ‘부캐’ 그룹 싹쓰리 / MBC
최근에는 부캐라는 말이 게임을 벗어나서 ‘멀티 페르소나’를 이르는 말로 폭넓게 쓰인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이르는 말이다. 이후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페르소나를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일컫는 말로 사용했다. 융은 인간이 천 개의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현대인에게서 이 멀티 페르소나 현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일할 때와 퇴근 후 레포츠를 즐길 때의 페르소나가 다르다. 장소나 상황에 따라 삶과 정체성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부캐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연예계다. 30일 음악 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신곡 ‘지금 여기 바닷가’로 1위를 차지한 혼성그룹 ‘싹쓰리’가 대표적이다. 싹쓰리는 유재석, 이효리, 비가 각자의 ‘부캐’인 유두래곤, 린다G, 비룡을 내세워 결성한 그룹이다.

이들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각자의 부캐 설정을 손수 정하기도 했다. 유재석의 부캐 ‘유두래곤은’ 신체 콤플렉스를 웃음 포인트로 승화한 이름이다. 이효리의 부캐 린다G는 어렵사리 떠난 유학길에서 우연히 미용실로 대박을 터뜨려 어마어마한 재력가가 되었다는 설정을 담았다. 비의 부캐 비룡은 가요계의 용으로서, 성룡, 이소룡과 함께 아시아의 3대 룡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부캐 열풍의 시초 마미손의 ‘소년점프’ / 마미손 유튜브 채널

부캐 열풍의 시초는 래퍼 마미손이 등장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날카로운 목소리와 재미있는 가사를 무기로 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777’에 핑크색 복면을 쓰고 참여한 ‘마미손’은 유명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 대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기 위해 복면을 썼다고 밝혔다.

비록 가사를 틀려 경연에서는 탈락했으나, 탈락 직후 그가 발표한 곡 ‘소년점프’는 재치있는 가사로 유튜브 조회수 4182만회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등장한 유재석의 ‘유산슬’, 김신영의 ‘다비 이모’, 박나래의 ‘조지나’ 등이 연이어 흥행하며 부캐는 가장 ‘핫’한 문화 현상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됐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부캐를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추세이며, 향후에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부캐 열풍의 양면성을 짚었다. 싹쓰리처럼 부캐릭터를 만드는 과정, 음원을 만드는 과정을 전부 노출하면 시청자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다. 이 덕에 구매자가 모여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이는 방송 프로그램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부캐 형성을 통한 성공 사례가 하나 둘 나오면서 후발주자가 뛰어들 수 있는 새 시장의 성공사례를 발굴해 선순환을 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김성수 평론가는 "부캐 열풍이 불기 전에도 배우가 가수를 하거나 가수가 배우를 하는 등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연예인이 많았으나, 그 과정에서 ‘배우인데 왜 가수를 해’ 같은 폄하나 잘못된 평가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며 "최근에는 방송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부캐’를 형성해 자연스럽게 새 시장을 여는 시도가 다수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