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모 게임 이용자 제보를 받았다. ‘치명적인 버그를 악용, 게임 경제 시스템에 악영향을 준 이용자를 게임사가 제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게임 공지사항에는 이 사건을 다룬 안내가 없었다.

기자는 게임사 관계자에게 "이용자에게 사건을 설명한다면 납득할텐데, 어째서 소통하지 않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에 아연실색했다. ‘종일 게임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많이 나온다’는 식 대답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종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그만큼 더 소중한 고객이 아닌가. 당시에는 단지 말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가디언 테일즈 논란’을 두고 게임 업계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말실수가 아닌 것 같다.

신작 게임 가디언테일즈 NPC는 ‘이 걸레년이’라는 비속어 대사를 말한다. 원래 영어 대사는 ‘Whore(매춘부)’다. 이 대사를 ‘불편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운영사는 사전 공지 없이 휴일인 일요일에 이 대사를 ‘이 망할 광대같은게’로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일부 이용자는 게임 출시 직후 해결할 일이 쌓인 상황에서 ‘사소한 대사’를 굳이 ‘일요일’에 수정한 점,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게임 내용을 바꿨다’는 점을 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Whore(매춘부)라는 단어에 대응해 수정한 ‘광대’가 맥락에 맞지 않고, 이 단어가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며 ‘환불 운동’을 벌였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이 가운데 익명 직장인이 앱에서 나온 의견이 기억에 남는다.

이 직장인은 이번 사건에 항의하는 이용자를 분탕종자(야단스럽게 훼방을 놓는 사람)라고 표현했다. "분탕종자 탓에 게임사나 일반 이용자가 피해를 본다"며 "그들이 언제나 분탕종자인 것은 맞다. 휘둘려서 운영하면 문제만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다른 의견에서는 이용자의 항의를 단순히 ‘갑질’, ‘페미 사냥’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게이머가 생떼를 쓴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게임 업계에서 게이머를 ‘분탕종자’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게임 업계 미래는 어둡다.

부분 유료화 정책을 주로 채택하는 한국 게임은 제품이자 서비스(GaaS, Game as a Service)에 가깝다. 오래 서비스하며 꾸준히 수익을 낸다.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다.

그런데, 게임 업계 일부 종사자는 고객이 게임에 꾸준히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게임 내용을 이용자 동의 없이 마음대로 고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에 반발하면 '분탕종자' 취급한다. 정말 분탕종자라면, 게임에 애정이 전혀 없다면 쓴소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페미니즘 이슈는 둘째치더라도, 가디언 테일즈는 ‘선 넘는’ 블랙코미디와 패러디를 주요 매력으로 삼은 게임이다. 원본이 너무 심한 욕설인 탓에 대사를 수정한다고 해도, 본래 시나리오의 묘미를 살리면서 수정했어야 한다. 그에 앞서 게임 이용자의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Whore’를 광대로 번역한 것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이를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고쳤다면 그 의도를 의심할 일이다.

이번 사태를 보고 요식업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말과 행동이 떠올랐다. 그는 한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손님이 먹고 간 식사의 잔반을 손수 만지며 손님의 반응을 체크했다. 그가 한 식당 주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식당 주인이 잔반도 안 봐? 음식을 못 하면 냄새날 수도 있다. 음식솜씨가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에 대한 관심이 없는데 무슨 장사를 하나. 찾아준 손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 더 지적한다. 게임 업계는 ‘게임은 문화·예술’이라고 늘 외친다. 그렇다면 자부심과 줏대를 가져야 한다. 문화·예술은 누가 함부로 훈수를 둔다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영화 ‘조커’의 주인공의 성격과 대사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를 ‘누구나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면, 이 영화가 그토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자부심과 줏대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게임 업계는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