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내 암호화폐 채굴 시장이 살아나면서 현지 그래픽카드 수요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채굴 시장 과열로 인한 그래픽카드 품귀 및 가격 상승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발단은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 출시를 준비하면서 기존 세대 그래픽카드(GPU)를 단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다수의 중국 매체들은 엔비디아가 기존 지포스 20시리즈 중 지포스 RTX 2070 이상 제품군의 단종 수순에 들어갔지만, 메인스트림급인 지포스 RTX 2060 및 GTX 1660 제품군은 계속 생산 및 주문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포스 RTX 2060 파운더스 에디션 /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60 파운더스 에디션 / 엔비디아
이는 지포스 1660~2060 제품군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메인스트림급 제품인 만큼 섣불리 단종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중국 내 암호화폐 채굴 시장이 살아나면서 급증하는 채굴용 GPU 수요를 충당하려고 엔비디아가 공급을 멈추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중국 IT 매체 마이드라이버스(MyDrivers)는 채굴 시장 수요 상승으로 인해 지포스 RTX 2060 및 GTX 1660 그래픽카드의 중국 현지 공장 출고 가격이 4달러~5달러(4700원~5900원) 상승(4일 기준)했다고 밝혔다. 현지 소매 판매 가격도 적게는 5달러에서 최대 20달러(2만3700원)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자국 내 암호화폐 채굴과 유통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던 중국에서 암호화폐 채굴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최근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정식 도입을 다시금 검토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위안화가 중국 현지에서도 각종 위폐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만큼, 실물 화폐의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특히,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도입에 확장성이 좋은 이더리움(Ethereum)이 사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현지 채굴용 그래픽카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 채굴기를 사용하는 비트코인에 비해, 이더리움은 상대적으로 그래픽카드(GPU)를 이용한 채굴이 효율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카드를 이용한 암호화폐 채굴 시스템 / IT조선DB
그래픽카드를 이용한 암호화폐 채굴 시스템 / IT조선DB
중국에 제품 생산 공장을 둔 국내 한 그래픽카드 업체 관계자는 "아직은 중국 현지의 그래픽카드 생산과 공급에 큰 차질이 없는 편이지만, 실제 거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이미 지포스보다 채굴 효율이 좋은 AMD 라데온 그래픽카드 제품은 현지서 동이 났으며, 그 대체 수요로 지포스 그래픽카드 수요가 다시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이더리움은 올해 초를 기점으로 거래량과 가격이 꾸준히 상승 중이다. 거래 가격은 3월 중순경 1이더리움당 110달러(13만원) 선까지 내렸던 것이 꾸준히 오르더니, 7월 20일 245달러(29만원)에서 급격히 상승해 8월 6일 400달러(47만3600원)를 넘어섰다. 거래량도 2020년 1월 말 기준 하루 48만 건 수준까지 떨어졌던 것이 꾸준히 증가해 8월 10일 기준 하루 129만 건 수준으로 회복된 상황이다.

이더리움은 올들어 꾸준히 거래가가 상승하면서 최근 1코인당 400달러를 넘어섰다. / 코인겍코 갈무리
이더리움은 올들어 꾸준히 거래가가 상승하면서 최근 1코인당 400달러를 넘어섰다. / 코인겍코 갈무리
업계는 중국 내 암호화폐 시장의 달아오르는 상황이 글로벌 PC 시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2017년과 2018년을 전후로 두 번에 걸쳐 암호화폐 시장이 급성장하고 채굴 수요가 폭증했을 때, 일반 소매용으로 판매될 그래픽카드 제품까지 채굴 업계가 몽땅 쓸어가면서 시중 가격이 정상시 대비 2배 가까이 폭증하고 유통망 자체가 마비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채굴용 GPU 판매 급증으로 역대급 실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2018년 2분기 이후 거품이 빠진 암호화폐 시세 폭락과 과잉 생산한 GPU 재고 처리 문제로 주가가 반 토막이 나고 차기작 출시가 지연되는 등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