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디지털 카메라·캠코더·렌즈·스마트폰 카메라 등 광학 업계 이슈를 집중 분석합니다. [편집자주]

디지털 카메라 업계가 ‘UHD(초고화질, Ultra High Definition) 동영상’ 시장에 큰 기대를 겁니다. UHD 동영상의 화질은 사람의 머리카락 한올한올, 건물 바깥 벽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 새벽녘 하늘의 오묘한 색상을 실물처럼 표현할 정도로 좋습니다.

그래서 UHD 동영상을 찍으려면 ‘촬영 기기의 성능’도 우수해야 합니다. 대형·고화소 이미지 센서와 교환식 렌즈, 영상 기기 연결 단자와 각종 촬영 편의 기능을 가진 디지털 카메라가 UHD 동영상 제작 도구로 각광 받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8K UHD 관련 기기들 / 차주경
8K UHD 관련 기기들 / 차주경
캐논과 소니, 니콘과 파나소닉 등 주요 디지털 카메라 제조사들은 앞다퉈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가진 미러리스 카메라를 발표합니다. 곧 다가올 UHD 동영상 시대, 촬영 기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섭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황혼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업계는 UHD 동영상이 새 수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UHD 동영상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구원투수가 되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합니다. UHD 촬영 기기를 도울 편집, 재생 기기 등 ‘생태계’가 얼마나 빨리 자랄지가 관건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에는 없는 휴대성, 고속 통신망을 가진 UHD 동영상 촬영 기기 ‘스마트폰’과 경쟁도 해야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 제조사, UHD 동영상 특화 기기 속속 선보여

디지털 카메라 제조사는 신제품에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넣습니다. 해상도는 4K(3840 x 2160)가 주력이었으나, 캐논이 업계 최초로 8K(7680 x 4320)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춘 미러리스 카메라 EOS R5를 출시하며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캐논은 EOS R5를 8K UHD 시장에, 동생격인 EOS R6를 4K UHD 시장에 각각 선보입니다.

소니는 고감도와 동영상 특화 미러리스 카메라 a7S시리즈 신제품 a7S III를 곧 판매합니다. 지금까지의 미러리스 카메라 가운데 4K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니는 첫 8K UHD 동영상 타이틀은 캐논에게 내주더라도, 지금 시장에서 각광 받는 4K UHD 동영상 시장을 거머쥐고 실속을 얻자는 전략입니다.

파나소닉도 35㎜ 미러리스 카메라 신제품 루믹스 S5를 곧, 9월 2일 공개합니다. 파나소닉은 마이크로포서즈에 이어 35㎜ L 마운트 미러리스 카메라 루믹스 S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이 가운데 파나소닉 루믹스 S1H는 6K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춘 미러리스 카메라로 주목 받았습니다. 파나소닉 루믹스 S5는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갖춘 ‘보급형’ 미러리스 카메라로 알려졌습니다. UHD 동영상 입문자를 겨냥한 셈입니다.

TV와 모니터, 편집 등 관련 기기 시장 성장이 관건, 스마트폰과의 경쟁도 이어져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UHD 동영상 화질은 감탄할 만큼 좋습니다. 대형·고성능 이미지 센서는 인상적인 화면을 만들고, 마이크는 소리를 선명하게 잡아냅니다. 사진을 예쁘게 다듬는 이미지 처리 엔진은 UHD 동영상도 깔끔하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교환식 렌즈를 더하면 넓은 광각에서 초정밀 접사, 망원 스포츠와 인물 등 어느 부문에서든 고품질 UHD 동영상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재생할 UHD TV나 모니터, 이를 다룰 편집 도구와 저장 매체 등 기기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4K UHD TV와 모니터는 그나마 꽤 많은 양이 보급됐습니다. 문제는, 4K 이후에 올 8K UHD 시대입니다. 아직 8K TV의 세계 시장 판매량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8K 모니터의 수요는 훨씬 더 적습니다. 8K UHD 동영상을 찍어도 볼 수 없다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동영상 재생 기기 이전에 동영상 편집 도구도 중요합니다. 4K UHD 동영상은 고급 PC나 고사양 스마트폰으로 다룰 수 있지만, 8K UHD 동영상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8K UHD 동영상의 용량은 4K UHD 동영상의 서너배에 달합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용량이 막대한 8K UHD 동영상을 담을 고속·대용량 저장 매체도 문제겠군요. 지금도 고속·대용량 저장 매체가 있지만, 가격이 수백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 보급하기에는 무리입니다.

8K UHD 촬영 도구에 어울리는 고속·대용량 저장 매체 CFExpress. 8K UHD 동영상을 1시간쯤 찍을 수 있는 512GB 용량 제품이 100만원 전후 가격에 팔린다. / 샌디스크
8K UHD 촬영 도구에 어울리는 고속·대용량 저장 매체 CFExpress. 8K UHD 동영상을 1시간쯤 찍을 수 있는 512GB 용량 제품이 100만원 전후 가격에 팔린다. / 샌디스크
8K UHD 동영상 촬영 도구는 속속 나오고 있지만, 기기 생태계는 더디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둘의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과 생태계 구축 속도가 맞지 않는다면 8K UHD 동영상이 시장에 자리잡기까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 난관을 헤쳐나오더라도 디지털 카메라는 UHD 동영상 시장에서 또한번 스마트폰과 겨뤄야 합니다. 이미 사진, 영상 부문에서 스마트폰에 진 디지털 카메라이기에 이 대결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대부분 4K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지원합니다. 기기 내부 편집과 라이브 생중계 등 요긴한 기능도 지원합니다. 나아가 삼성전자 갤럭시S20울트라를 시작으로 8K UHD 동영상 촬영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이 속속 등장, 8K UHD 디지털 카메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과거 대형 이미지 센서와 교환식 렌즈의 고화질을 앞세워 스마트폰과 대결했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소비자는 디지털 카메라의 고화질보다 스마트폰의 간편함을 선택했습니다.

이 양상이 UHD 동영상 전장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UHD 동영상의 장점인 고화질을 제대로 표현할 기기가 없다면, 소비자는 일단 UHD 기능을 가진 촬영 도구를 찾되, 크고 무겁고 비싼 미러리스 카메라가 아닌 작고 가볍고 싼 스마트폰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UHD 동영상 시대의 총아이자 리더인 브이로거·영상 크리에이터가 어떤 기기를 선택할지도 업계 관심사입니다. 지금 이들은 후편집을 염두에 두고 고화질 UHD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주로 씁니다. 하지만, 야외 방송이나 생중계용으로는 번거로운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을 씁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스마트폰의 장점 ‘휴대성과 통신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카메라보다 동영상 화질과 촬영 성능이 한참 뒤떨어집니다. 새로운 유망 부문으로 떠오른 UHD 동영상 시장의 문을 먼저 여는 것은 누구일까요? 개성과 장단점이 명확한 탓에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입니다. UHD 동영상이 디지털 카메라를 구원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