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이노에 단단히 뿔난 LG화학 “수천억대 합의금 제시? 사실 아니다"

이광영 기자
입력 2020.09.02 15:11 수정 2020.09.02 15:56
LG화학이 단단히 뿔났다. 일부 언론은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 진행 중 수천억원대의 합의금을 공식적으로 제안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원만한 합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각사
2일 배터리 업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제시한 합의금 수준은 이직한 100명쯤의 직원 관련 인건비 정도에 해당한다. 외부에 알려진 수천억원대 규모라는 루머와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SK이노베이션은 합의금을 제시할 당시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LG화학 고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합의금으로 수천억원을 제시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배터리 업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영업 비밀 소송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터무니 없는 금액 제시로 우리를 우롱했다"고 일갈했다.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의 ‘간’을 봤다고 본다. SK이노베이션의 협상 전략이 원만한 합의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63-3부(재판장 이진화)는 8월 27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관련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소송'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SK이노베이션의 소 취하 청구를 각하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LG화학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2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유 등으로 SK이노베이션의 패소를 결정했다.

LG화학 제품이 탑재된 쉐보레 볼트의 배터리팩/ GM
LG화학 "국제 판례 근거로 합의금 산정해야"…증권업계 ‘2조원’ 전망

LG화학은 미국의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라 실제 입은 피해와 경쟁상의 부당이득, 미래가치와 최근 판례를 근거로 합의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Actual Loss(실제 피해-훔친 영업비밀을 활용한 수주액) ▲Unjust Enrichment(부당 이득-R&D 절감 비용) ▲Future Royalty(미래 가치-향후 수주액)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영업비밀 침해 건을 중대 범죄 행위로 본다. 2월 미 법원은 모토로라와 중국 하이테라 간 무전기 영업비밀 소송전에서 전직자를 통한 영업비밀 무단 침해 건에 대해 7억6500만달러(9200억원) 규모의 배상액을 선고했다.

배상액은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라 모토로라의 영업비밀을 무단 침해해 얻은 하이테라의 부당이득과 고의적이고 계획적 침해에 대한 징벌적 배상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무전기 시장 규모가 4조6000억원쯤인 것에 비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40조원에 달한다. 2025년에는 18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송이 이대로 진행될 경우 관련 배상액이 훨씬 클 수 있다.

2019년 5월 미 캘리포니아 법원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사 ASML US가 중국 반도체장비사 XTAL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8억4500만달러(1조원)의 배상액 판결과 함께 미국 내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소송 역시 ASML 직원이 영업비밀을 탈취해 XTAL로 이직한 것이 발단이 됐다. 모토로라 소송 케이스와 유사하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합의금 수준을 산정한 국내 증권사는 유안타증권과 흥국증권 두 곳이다. 두 곳 모두 합의금 규모를 2조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법조계에서는 ITC 조기패소 판결을 고려할 때 SK이노베이션이 수천억원을 공식 제시하더라도 LG화학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부지와 조감도 모습/ SK이노베이션
SK이노 "조단위 합의금 배임 소지"…LG화학 "사안 제대로 파악 중인지 의구심"

10월 5일 열리는 ITC 최종 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 제품의 수입 금지 결정이 나올 경우, 회사가 받게 될 타격은 단순 합의금 이상이 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수입금지 결정이 날 경우 미 조지아주에 들어설 예정인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기 어렵다. 인근 국가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더라도 미 수출길은 막힌다. 이 경우 고객사와 계약한 수주 물량에 대한 수조원대 피해 보상도 고심해야 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영업비밀의 실제 사업 적용에 대한 증거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전략을 펴는 모양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납득할 수 있는 합의금 규모가 산정돼야 하는데, 조단위 합의금을 책정한다는 것 자체가 주주 대상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이에 대해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어떤 영업비밀을 어떻게 사용해 소재, 부품, 셀, 모듈 등을 만들었는지 구체적 리스트를 갖고 있고, 이를 확인했기 때문에 조기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며 "SK이노베이션이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조차 의구심이 든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의 선택 폭은 제한적이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있어 ITC 역사상 조기 패소 예비결정이 최종 결정에서 뒤바뀐 경우는 없다. ITC 결정에 대한 미 대통령 거부권도 범죄에 해당하는 영업비밀에서는 한번도 시행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LG화학이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수간 담판이나 정부 중재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외국인 투자자가 40%에 달해 합리적 배상금액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일명 ‘퉁치기’ 협상이 이뤄질 경우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정부도 직권 남용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민간기업 간 분쟁에 중재 권한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결국 이번 분쟁은 양사 간 합의나 법적절차를 통해 마무리 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 관계자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객관적 근거를 통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지식재산권 보호 및 존중을 전제로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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