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내우외환 위기다. 안으로는 ‘사법 리스크’ 밖으로는 ‘트럼프 리스크’로 반도체 초격차 전략 실행의 어려움이 크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구체적 재판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이 또 다시 수년간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리더십 전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선일보 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선일보 DB
삼성전자는 최근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화웨이 반도체 수출 제재가 현실화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 상무부는 8월 17일(현지시각)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미국 기술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반도체 제품을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게 하고, 승인을 조건으로 예외적 허용하는 내용의 제재를 발표했다. 사실상 세계 모든 반도체 제조사가 화웨이와 거래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제재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까지 제재 영향권에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삼성전자는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메모리를 대량으로 공급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발표한 반기보고서를 통해 화웨이가 주요 5대 매출처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앞서 TSMC는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지만 애플·AMD·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 주문이 늘어 타격을 입지 않았다"며 "반면 삼성전자는 화웨이로 반도체 공급을 완전 중단하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고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증시 상장을 통해 9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고, 자국 반도체 업체에 10년간 법인세 면제 혜택을 준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기술 격차를 좁힌다.

한일 무역갈등으로 인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규제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리스크다. 양국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임에 따라 불확실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재계는 이같은 외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목표로 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다. 사법리스크가 현실화 되면서 대규모 M&A 또는 전략적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 지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2019년 4월 발표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반도체 대비 2배 이상 크다. 5세대(5G) 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 부회장이 과감한 투자와 생태계 확장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TSMC가 2나노 반도체 공정 개발과 생산을 공식화하는 등 기술 초격차로 압도적 1위 굳히기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근 IBM에 이어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며 파운드리 부문에서 한발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기소는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경쟁이 가열하고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최대 악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세계 최초 64메가 D램 개발을 이끈 주역인 권오현 상임고문도 반도체 사업에서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최고경영자의 결단과 리더십을 꼽은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환경 속에서 최근 삼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며 "반도체는 장기적 안목으로 선제 투자가 이뤄져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인데 이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