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넷플릭스법은 한미 FTA 위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이진 기자
입력 2020.09.21 06:00
미국발 국가 이기주의가 IT 분야를 흔든다. 기술 시장은 정치 중립적 분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미국 정부 차원의 개입이 상상을 초월한다. 마음만 먹으면 기업 하나쯤은 완전히 궤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 중국 기업이 대표적인 타깃이 되지만, 한국 역시 안전지대라고 볼 수 없다. 정부는 안정적 인터넷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미 정부는 넷플릭스의 손해를 고려한 듯 ‘한미 FTA 위반’을 들먹이며 압박에 나섰다. 자국 기업에 ‘특혜’를 주라는 식의 요구를 대놓고 하는 셈이다.

모바일 생태계의 중심에는 앱 장터가 있다. 애플과 구글은 자사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스마트폰의 앱 다운로드를 ‘앱 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하도록 유도한다. iOS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99% 이상의 스마트폰에 탑재됐다. 한국 이통3사가 연합해 만든 ‘원스토어’나 게임 업체인 에픽게임즈의 ‘에픽스토어’ 등 앱 장터도 있지만, 존재감은 미미하다.

최근 애플에 이어 구글은 앱 장터를 통해 앱을 유통하는 업체에 인앱결제(앱 내에서의 결제)만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앱이 아닌 웹 등 다른 곳에서 ‘결제’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약 인앱결제 이외 수단으로 결제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앱 장터’ 퇴출도 고려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엠이 서비스 하는 ‘멜론’ 이용료 결제의 경우, 기존에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용료 결제를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앱 내에서만 해야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는데,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요는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의 불합리한 조건에 대항하려면 iOS나 안드로이드 OS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단 한 개의 후보도 없다. 현재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 시장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모바일 관련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바다’ 플랫폼이 한 때 등장했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서드파티 앱스토어는 ‘보안’ 등 이슈로 이용자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

특정 기업의 OS·앱 시장 장악은 기업의 비즈니스 불확실성을 높인다. 미중간 무역 분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 화웨이는 더이상 구글로부터 기기 가동의 핵심인 운영체제를 탑재할 수 없다. 뒤늦게 자체 OS인 ‘홍멍’을 개발하는 등 대안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지만, OS의 안정성과 앱 생태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 등은 풀어나가기 어려운 숙제다.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의 납품이 끊긴 것 역시 비즈니스에 치명적이다.

한국은 무역 분쟁으로 부터 안전한 나라일까. 국가간 관계는 변화무쌍하다. 수가 틀어지면 언제든지 화웨이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다른 나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세계 지형별 공동 플랫폼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한중일 및 동남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가 연합해 새로운 운영체제와 앱 장터를 만들어 미국 기업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한 구글과 애플 관련 세금 납부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가지만 한국 정부에 지불하는 세금은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재 검토 말만 나오면 ‘한미 FTA 위반’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는데, 갑자기 한미 FTA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통신망 이용에 따른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미 정부의 압박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한국의 법 제정 과정에 타국인 미국이 간섭을 하겠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생기니 인터넷 기업에서 ‘역차별 논란’ 주장도 나오는 것이다. 제재 관련 법을 만들어봤자 미국 기업은 손대지 못한 채 우리 기업만 두드려 잡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운영체제에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끼워팔기하며 EU로부터 수천억원의 벌금 조치와 함께 시정명령을 받았다. 애플과 구글 역시 마찬가지다. iOS나 안드로이드에는 앱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라는 앱 장터가 끼워팔기처럼 설치돼 있다. 이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처럼 끼워팔기 아니냐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바일 플랫폼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한 이들 기업의 권한 남용 문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글로벌은 하나다’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 이 말에 회의감이 느껴진다.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면 부당한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넷플릭스법 재정에 대한 미 정부의 간섭은 납득하기 어렵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에서 그들만의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 기업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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