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쳐들면서 돈 줄이 막혔다는 프리랜서 지인에게 "돈 워리(Don’t worry)"라고 말했더니 "돈 걱정하라고?"하며 대꾸한다.

돈 워리가 돈 걱정이라나 뭐라나 우스갯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여유를 잃지 않은 듯 보여 마음이 놓였다. 새로운 일은 그렇다 치고 이미 일을 하고도 고객에게 돈 달라 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단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더 입이 바싹 말라가며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죽을 맛이라고 한다. 흘러가는 시간만큼 한숨도 흘러내린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갈 테니 잘 견디라 말해주었지만 사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속 사정을 어디 말로 다 하랴.

지금 같은 시기가 아니어도 일을 하고도 왜 이렇게 눈치 보고 애를 태우며 돈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을 마치든 안 마치든 한 달에 한 번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직장 시절 월급이 자연스레 생각날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는 소속만 안되어 있지 소속된 사람들과 똑같이 일을 한다. 일이 끝났으면 따박따박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이 왜 이리 고단한지 모르겠다.

처음 프리의 세계에 뛰어들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지만, 마음 같아선 알아서 돈 받아주는 자동화 솔루션을 만들고 싶다.

일의 시작은 계약서부터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일을 시작하기 전 계약서를 쓰는 것이 좋다. 특히, 돈 받는 날짜를 계약서 첫 장에 주요 내용과 함께 요약해 눈에 띄게 명시한다.

계약서를 쓴다고 100% 돈이 제때 들어오는 건 아니다. 경험상 고객에게 돈 주는 날짜를 각인시키고 지연이나 미수의 확률을 줄여 준다. 혹여 고객에게 사정이 생겨 지급일이 미뤄지더라도 전후 사정과 다음 지급 날짜를 정확히 알게 되면 최소한 돈이 언제 들어올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고객이 먼저 소상히 알려주는 경우보다 내가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계약서에 쓴 날짜를 근거로 고객에게 상황 설명을 요청하기가 수월해지는 건 분명하다.

법적 보호나 제도권 내의 혜택을 받을 때는 성문법이 유리하다. 그러니까 계약서는 단순히 거래 후 돈을 받는 문제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결의 토대가 된다. 여러 제도 상 지원을 받는 데도 유용하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계약서를 쓰면 되지 무슨 말이 많나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계약서 작성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지 않거나 부담스러워하면 일을 받는 입장에서 선뜻 계약서를 쓰자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아는 사람 부탁일 수도 있고 소소한 일일 수도 있고 일회성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밖에 기타 등등의 이유로 대충 구두로 진행되는 일들이 많다. 문제가 없을 때는 계약서가 있건 말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계약서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를 부른다.

계약서 작성이 어려울 땐 이렇게

부득이 업무 계약서를 쓰지 못할 경우에는 일이 끝난 후 해촉 증명서나 사실관계 확인서 혹은 지급명세서 등의 서류를 요청해 노동의 근거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이런 서류는 고객이 신중한 검토 없이도 간단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자료다.

간혹 문서 양식이 없다는 고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먼저 양식을 준비해 두는 것도 좋다. 이는 비단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금 조정 시나 정부나 기관의 지원금을 받을 때도 요청되는 서류기 때문에 미리 확보해 두면 여러 면에서 득이 된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최소한 일의 내용과 대가를 분명히 명시한 이메일 자료를 남기는 것이 현명하다. 요즘은 다양한 업무의 프리랜서가 생겨나고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디지털 노마드가 대중에게도 친숙해지면서 법적인 제도나 대중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당연히 계약서를 쓰고 당당히 요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분야에 따라 사람에 따라 아직도 당연히 쓰고 당당히 요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나 대우를 구걸하듯이 받아야 하는 나쁜 전례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줄 돈을 잊어서도 안되고 받을 돈을 소심하게 기다려서도 안 된다.

돈은 나와 내 일의 가치다. 돈 얘기는 가치의 얘기다. 가치를 속물로 폄하해서도 꺼려서도 안 된다. 사실 구두든 문서든 계약을 통해 이뤄졌다면 가치를 요구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계약은 고객의 처분만 기다리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파트너 관계로 이루어지고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게 계약서에 명시되어야 한다. 이는 고객도 좋다. 합당하게 일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걸 뛰어넘는 양쪽의 악덕 사례는 여기서 논외로 한다. 돈 받는 자동화 솔루션이 없더라도 일을 하면 대가를 받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길 바란다.

계약서가 없어도 계약서가 있는 것처럼 서로 믿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계약서부터 씁시다! 물론 제대로.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전쟁터를 걸어 나와 지옥의 문을 연 4년차 프리에이전트다. PR마케팅 대행, 강의, 콘텐츠 개발, 번역 분야에서 친절한 마녀로 활동하고 있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 원하는 조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며 프리한 삶이 지속가능한지 실험 중이다. 천국 같은 프리의 세계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