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을 잘 뜯어보면 공부할 만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신기한 느낌이 드는 잡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영국 게임사 스포츠 인터랙티브의 풋볼매니저(FM) 시리즈는 축구팀을 관리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게임 시리즈에는 세계 50개국 리그, 축구 클럽 2500개, 선수·스태프 5만명쯤의 데이터가 담겼다. 회사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 측정을 위해 세계 정보원 1300명을 활용한다.
이용자는 원하는 팀의 감독이 되어 훈련, 경기전술, 이적 등 선수와 관련한 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코치, 스카우트 등 스태프를 구성하고 구단 재정까지 관리하면서 구단을 성장시켜야 한다.
FM은 관리할 것이 워낙 많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게임의 몰입감 또한 높아 대표적인 ‘폐인 양성 게임’으로 꼽힌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FM에 빠진 남편이 이혼을 당하는 사례가 나온 탓에 ‘이혼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혼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은 사람도 있지만, 축구 감독이 되는 내용을 담은 풋볼매니저를 즐기다가 실제 축구 감독으로 부임한 사례도 있다.
실제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수 이적 등에 FM 데이터 활용
대표적인 인물이 아제르바이잔 청년인 호슨자데(Vugar Guloglan oglu Huseynzade, 29)다. 그는 21살이던 2012년에 아제르바이잔 프로 축구팀 FC바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호슨자데는 2010년~2012년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후 2012년 2월부터는 FK 바쿠에서 전술담당자로 일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감독이 됐다.
그는 선수 스카우팅 관련 회사에서 잠시 일한 경험은 있었으나, 직접 팀을 운영하거나 선수를 감독해본 경험은 전무했다. 대신 그가 내세운 주요 경력은 ‘FM’이었다. 그는 팀 관계자 면접에서 게임 내에서 자신이 이룩한 경지와 이력을 소개하면서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호슨자데는 실제 축구 선수, 감독 경력이 있던 후보 다수를 제쳤다. 그가 제친 감독 후보 중에서는 1991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장피에르 파팽’도 있었다. 호슨자데는 감독 선임 당시 인터뷰에서 "항상 축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고, 2002년 이후로 FM을 꾸준히 플레이했다"며 "우선 팀을 유로파리그에 진출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2016년 영국 축구전문지 디즈풋볼타임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2시즌 계약으로, 약 18개월쯤 감독직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수를 훈련하는 등 경기 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주로 선수 이적 시장, 마케팅 등 코치 일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 클럽에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FC바쿠의 일부가 될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다"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클럽의 역사로서 기록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FM은 실제 축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구단 에버튼FC는 2008년 스포츠 인터랙티브사와 계약해 이 게임 데이터를 실제로 선수 스카우트에 활용한다. 2014년에는 스포츠 데이터분석 업체 ‘프로존’이 스포츠 인터랙티브와 선수 데이터·자료 제공권 계약을 맺고 자사와 협업하는 프리미어리그 구단에 이를 제공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고, 이제는 같은 팀에서 감독을 맡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는 2016년 인터뷰에서 "맨유에서 뛰던 시절 FM을 즐기면서 긴장을 풀었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 축구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며 "특히 어린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하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팀 선수들이 피파나 풋볼매니저 같은 축구게임을 자주 하는데, 이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풋볼매니저 시리즈의 총괄 개발자 마일즈 제이콥슨은 영국 게임 시장 발전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대영 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기도 했다.
한편, 한국 청소년이 영국 5부리그 팀 감독에 지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2년, 18살(1994년생)이었던 양 씨는 잉글랜드 5부리그 ‘바스시티’ 구단에 감독이 되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100통 이상 보냈다. 양 씨는 "현재의 감독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바스시티의 전술적 문제점과 팀 운영 방안에 대한 조언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바스시티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이 FM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같다"며 "이 학생에 대한 소식은 노르웨이, 루마니아, 프랑스, 영국 등 다른 클럽에도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바스시티는 양 씨를 구단의 명예 전술 분석관으로 임명했다. 이에 양 씨는 임금을 요구했으나, 구단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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