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법인 ‘LG에너지솔루션’(가칭)의 초대 수장이 누가될지에 배터리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CEO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경륜을 갖춘 부회장급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장에서 배터리 사업을 꾸준히 이끌어 전문성을 갖춘 사장급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6일 재계에 따르면 LG화학은 30일 개최하는 임시주총을 전후로 신설법인 CEO를 선임할 계획이다. 신설법인은 30일 임시주총 승인을 거쳐 12월 1일부터 공식 출범을 앞둬 초대 CEO 내정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신설법인의 성장을 이끌 안정적인 카드로 꼽힌다. 신 부회장이 LG화학 대표이사직을 유지한 채 신설법인 CEO까지 겸직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LG화학은 신설법인을 배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육성해 2024년 매출 규모를 30조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내놨는데, 이 밑그림을 신 부회장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김종현 LG화학 사장·김명환 전지사업본부 배터리연구소장 / LG화학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김종현 LG화학 사장·김명환 전지사업본부 배터리연구소장 / LG화학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은 과거 동부팜한농을 인수한 이후 대표이사를 겸직한 적 있다. 신 부회장의 겸직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신 부회장은 1984년 한국3M에 입사해 기술지원담당 업무를 맡았다. 3M 글로벌 전자재료사업부 부사장, 산업용 비즈니스총괄 수석부사장을 거쳐 2017년엔 수석부회장에 올랐다. 수석부회장은 3M의 글로벌 연구개발(R&D)을 비롯해 전략 및 사업개발, 제조물류본부 등을 모두 책임지는 자리다. 2019년 LG화학 대표이사를 맡은 후에는 대규모 외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배터리 사업 분사를 주도했다.

권영수 LG 부회장의 ‘등판론’도 나온다. 권 부회장은 2012년부터 4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지내며 배터리 사업을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3월 LG화학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5년 만에 LG화학 이사회로 복귀했다.

최근 LG전자 VS사업본부의 배터리팩 생산 라인을 LG화학으로 이관하는 작업도 권 부회장의 의중을 반영해 추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권 부회장이 지주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8년 7월부터 VC사업본부(現 VS사업본부)의 배터리 사업을 LG화학에 복속하는 조직개편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LG 내부에서는 신설법인에 부회장급이 내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기업 3M에서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기존 LG화학 CEO인 신학철 부회장이 분사한 기업 대표로 가기엔 급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신설법인 CEO를 겸직하는 방안은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권영수 부회장 역시 과거 계열사 CEO를 두루두루 거친 후 지주사로 온 만큼 다시 계열사 대표로 돌아가는 그림은 부자연스럽다.

결국 신설법인 초대 수장은 배터리 사업을 가장 잘 아는 LG화학 내 사장급이 선임될 것이 유력한 분위기다. 회사 내부에서는 10년 이상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을 진두지휘한 김종현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이 1순위로 꼽힌다.

김종현 사장은 1984년 LG생활건강 기획팀을 시작으로 2009년 LG화학 소형전지사업부장을 맡았다. 이후 자동차전지사업부장 등 전지 분야 주요 직책을 경험하며 소형전지사업 성장을 이끌었다. 아우디, 다임러그룹 등 유럽 및 중국 완성차 업체로부터 잇따라 배터리 신규 수주를 따내는 성과를 냈다. 2018년부터 전지사업본부장으로 보임해 LG화학의 글로벌 배터리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 김명환 전지사업본부 최고구매책임자(CPO) 겸 배터리연구소장, 김동명 LG화학 자동차전지사업부장(부사장)도 전문성을 갖춘 CEO 후보로 거론된다.

김명환 CPO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 LG화학의 배터리 R&D를 총괄한 인물로 국내 최초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 성과를 남겼다. 김동명 부사장은 2014년 LG화학 모바일전지개발센터장을 맡아 2017년 소형 전지사업부 전무를 거쳐 2019년 12월 부사장 승진했다.

하지만 김 CPO는 엔지니어 출신의 한계, 김 부사장은 50대 초반의 나이가 CEO로 올라서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온다.

LG화학 한 관계자는 "신설법인 조직 구성이나 인사와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