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 신제품이 중고나라, 당근마켓 등 중고 전문 거래 장터에서도 덩달아 화제로 떠올랐다. 지포스 30시리즈의 일부 물량이 포장을 채 뜯지도 않은 ‘미개봉’ 제품으로 ‘중고’ 장터에 속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웃돈이 더해진 가격에 등장해 정작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는 현재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이전 세대 대비 성능은 대폭 향상되고 가격은 이전 수준을 유지한 덕분이다. 지포스 RTX 3080 기준 100만원 안팎에 달하는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주요 온라인 쇼핑몰과 오픈마켓, 제조·유통사 자체 쇼핑몰 등에 물량이 풀리는 즉시 수 분 내로 동이 날 정도다. 제품 구매를 위해 복수의 아이디, 자동 구매 매크로 등 각종 편법이 동원될 정도다.

고가 제품에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웃돈을 붙여 중간 마진을 노리는 전문 리셀러, 소위 ‘되팔이’들도 극성이다.

신제품 입고 소식과 판매 공지가 올라오면 그 직후 중고장터에 바로 되팔이 제품이 등록되는 것은 흔한 모습이다. 아예 대놓고 되팔이 제품을 의미하는 ‘미개봉 품’을 밝히는 판매자도 적지 않다.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 ‘파운더스 에디션’ 제품군 / 엔비디아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 ‘파운더스 에디션’ 제품군 / 엔비디아
지포스 30시리즈만의 얘기는 아니다. 공급 물량보다 수요가 많은 인기 상품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다. 앞서 수 차례 대란을 겪었던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과 ‘삼성 갤럭시 톰 브라운 에디션’ 등이 대표 사례다.

당연히 되팔이 제품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처음부터 되팔이가 목적인 구매가 늘어날수록 실제 필요한 대기 수요자의 구매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 정상 가격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대놓고 수십만 원에 달하는 웃돈을 붙여 매물로 올리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지포스 30시리즈의 경우 신제품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물량이 적지 않다 보니,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일부 판매업자가 지인이나 3자를 통해 중고장터에 등록하고 판매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구매자들은 중고장터에서 거래 상대가 일반 개인 이용자인지, 전문 업자인지 알 수 없는 데다, 공식 유통 경로로 판매하는 것에 비해 ‘시세’에 따라 마진을 더 남길 수 있는 만큼, 업자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아예 일부 업체는 중고나라의 ‘협력사 신청’을 통해 정식 판매업자로 등록하고 제품을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업체들은 그래픽카드 가격이 직접 노출되는 단품 판매 대신 조립 PC 완제품에 탑재한 형태로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나라 사이트 내 지포스 RTX 3080 키워드 검색 현황 변동 추이 / 중고나라
중고나라 사이트 내 지포스 RTX 3080 키워드 검색 현황 변동 추이 / 중고나라
분노의 화살은 중고 거래 사이트의 운영진 측에도 돌아가고 있다. 수많은 ‘되팔이’가 활개를 치고 있어도 운영진 측이 이를 특별히 제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 보니 "되팔이를 장려한다", "업자들과 한통속이 틀림없다"라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 중고 거래 전문 사이트 측은 판매자와 거래자를 연결해 안전하고 성공적인 거래를 유도하는 중계 플랫폼일 뿐이고, 실제 거래하는 제품의 신품-중고품 여부나 판매자의 가격 책정 등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포스 30시리즈 매물이 다량인 중고나라 관계자는 "사이트 자체가 특정 포털의 카페 형태로, 우리가 직접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되팔이 판매자들을 미리 발견해 차단할 수 있는 수단도 없는 상황"이라며 "신고나 수동 모니터링을 통해 의심되는 판매자를 직접 찾아 페널티를 주고, 이용자들이 최대한 ‘안전거래’를 통해 거래하도록 유도해 사기 피해를 막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업체가 직접 협력사로 등록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내부적으로도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전문 업자를 통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달라’라는 요청도 적지 않아 협력사 제도를 마련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지포스 30시리즈 거래가 활발한 중고 거래 사이트의 게시판 모습 / 중고나라 갈무리
지포스 30시리즈 거래가 활발한 중고 거래 사이트의 게시판 모습 / 중고나라 갈무리
현재 중고 장터 등지에서 개인 자격으로 판매하는 경우, 상품 자체가 불법이거나 성인용품 등 문제가 있는 상품이 아닌 이상 해당 사이트에서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전혀 없다. 판매자가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고 특정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이상 법적으로도 막을 방법은 없다.

최선은 가급적 ‘되팔이’가 판매하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도 여의치 않다. 당장 신제품을 쓰고 싶은 생각에 웃돈을 내더라도 사겠다는 구매 희망자도 적지 않다 보니, 이를 노리는 되팔이의 등장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포스 30시리즈의 공급 부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6일 탐스하드웨어 등 외신들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TC 2020 콘퍼런스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를 인용, 지포스 30시리즈의 공급 부족이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젠슨 황 CEO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포스 30시리즈 수요가 우리의 예상보다 엄청나게 초과했다"며 "급증한 수요를 파악하고 있지만, 당장 그만큼 공급 물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소 연말까지 공급 부족으로 인한 품귀 현상이 계속되는 만큼, 시세 차익을 노리는 ‘되팔이’와 어떻게든 정가에 구매하려는 구매 대기자들의 신경전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