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2위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공급받기 위한 경쟁을 펼친다. 이 장비는 5나노 기반 반도체 양산에 필수인데 공급량이 제한적이다. 공급사로부터 전량을 도입하려는 TSMC와 최대한 많은 양을 확보하려는 삼성전자의 장비 쟁탈전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7월 7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7월 7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본사 소재지인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출국했다. 삼성전자는 11일 3분기 영업이익 1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 어닝 서프라이즈 발표 당일 이 부회장이 출국하며 관심을 받았다.

이 부회장의 네덜란드 방문은 ASML과 EUV 노광기를 TSMC에 앞서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2019년에 10대의 EUV 노광기를 도입했고, 2020년에도 추가 도입해 연말까지 20대 미만의 노광기를 보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TSMC는 20대쯤의 EUV 노광기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UV 노광기는 기존 불화아르곤(ArF·193㎚) 대신 EUV를 광원으로 쓰는 차세대 노광기 제품이다. 5나노 이하 미세한 회로패턴을 그려넣을 수 있는 유일한 장비다. 삼성전자는 장비 확보 규모에 따라 파운드리 1위 TSMC 추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처음 EUV 공정을 파운드리 사업에 적용했다. 화성과 평택 공장에 이어 미국 오스틴 공장에도 EUV 인프라 구축을 고심 중이다.

EUV 노광 기술 이미지/ ASML
EUV 노광 기술 이미지/ ASML
ASML은 2019년 EUV 노광기를 26대 독점 출하했다. 2020년에는 최대 35대, 2021년에는 45~50대 출하가 목표다. 가격은 2000억원 안팎으로 일반적인 반도체 장비 대비 비싸다.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더 많은 장비 도입이 절실하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는 2021년까지 EUV 노광기 50대를 추가 구매할 계획이다. 이 규모는 ASML이 2021년 생산하는 전량에 해당한다.

TSMC는 EUV 노광기 구매량을 매년 늘린다. ASML의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SMC로 판매 비중은 39.7%다. 2018년(22.6%) 대비 크게 증가했다. EUV 장비 10대 중 4대가 TSMC로 공급됐다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의 EUV 노광기 도입이 보류됐다"며 "ASML로부터 EUV 노광기 도입 경쟁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TSMC 간 2파전이 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ASML 본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며, 반도체 업계에서는 ASML이 삼성전자에 대한 EUV 노광기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ASML과 우호적 관계를 위해 2012년 지분 3%를 사들였다. 2016년 지분 절반(1.5%)을 매각해 현재는 1.5%를 보유 중이다. 당시 TSMC와 인텔도 각각 지분 5%, 15%를 매입했지만, TSMC는 2015년 지분 전량을 매각했고 인텔은 보유 지분율을 3%로 줄였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시장점유율 전망치 기준으로 파운드리 세계 1위는 TSMC(53.9%), 2위는 삼성전자(17.4%), 3위는 미국 글로벌파운드리(7.0%)다. 점유율 격차는 36.5%포인트로, 2분기(32.7%포인트)보다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19년 ‘비전 2030’을 수립했다. 전체 투자금의 55%인 73조원을 연구개발(R&D)에 쓰고, 45%인 60조원은 EUV 노광기 등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투입할 방침이다. 파운드리 1위가 구체적인 목표다.

하지만 3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한 TSMC의 투자도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EUV 노광기를 중심으로 한 양사의 장비 도입 경쟁이 본격화 하는 이유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투자 전망을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7나노·5나노 생산능력이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제조라인 증설을 위한 투자를 늘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