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권 최초 자체 블록체인으로 각국 CBDC 개발 지원 시
메신저·페이·블록체인 3박자로 각국 중앙은행 관심 ‘기대’
속도·안정성·확장성 탓 골머리 앓던 중앙은행에 해결책 제시

네이버 일본 자회사 라인이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개발 지원에 나선다. 비금융권 대기업이 중앙은행을 타깃으로 CBDC 개발 지원에 나서는 건 세계 첫 사례다. 그동안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던 각국 중앙은행의 CBDC가 라인 플랫폼 공급으로 실체화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CBDC는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일컫는다. 지폐나 동전처럼 액면가가 정해져 있는 법정화폐 단위를 사용한다. 민간이 발행하고 시장가격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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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라인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라인은 최근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CBDC 개발 지원 사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라인 관계자는 "CBDC에 관심을 가진 여러 중앙은행에 CBDC 플랫폼 기술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CBDC 플랫폼 제공 사업 사실을 인정했다.

라인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이 지닌 확장성과 안정성 등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각국 중앙은행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형식의 ‘커스터마이징 CBDC’ 개발 지원을 목표한다. 현재 아시아 주요 국가 중앙은행과 블록체인 플랫폼 기술 적용을 논의하고 있다. 라인은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라인 관계자는 "현재 논의가 이뤄지는 정확한 국가명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 "소액결제용 CBDC 개발에 주안점을 둔 아시아 주요국이다"라고 귀띔했다.

라인, 소액결제 CBDC계 ‘오아시스’ 될까

라인의 이같은 움직임은 세계 중앙은행이 분산원장기술 기반 CBDC 발행에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추진된 것이다. 가장 발 빠르게 CBDC 시범 운영에 나선 중국을 필두로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중앙은행은 CBDC 패권 경쟁에 나선 상태다.

CBDC는 크게 거액결제와 소액결제 용도로 나뉜다. 스위스와 캐나다, 프랑스 등은 ‘직접 운영 방식’을 고집하며 거액결제용 CBDC 도입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 바하마 등 소액결제용 CBDC를 도입하는 국가는 간접 운영방식(중앙은행이 개인 고객의 CBDC를 금융기관·지급 결제 서비스 제공업자 등이 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을 염두에 뒀다.

문제는 분산원장기술 기반 소액결제용 CBDC를 개발하는 중앙은행들이 개발에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은행은 현재 하이퍼레저패브릭과 R3 코다, JP모건 쿼럼,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가지고 시범 운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 기존 결제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민간 영역에서 일어나는 소액 결제를 처리할 만큼 안정성과 속도, 확장성, 개인정보보호, 시스템 복원력 측면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평가다.

국제결제은행이 3월 내놓은 CBDC 관련 보고서에서 따르면 분산원장기술 기반 CBDC 취약점으로 제한적인 결제 처리량과 느린 결제 처리 속도, 거래 안정성 등이 지적됐다. 보고서는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CBDC는 처리할 수 있는 거래량은 제한적이다"라며 "따라서 일상적인 소액 결제를 부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의 CBDC 개발 지원은 이들 중앙은행에게 오아시스가 될 전망이다. 라인은 메신저와 페이 사업 등 리테일 서비스 경험과 자체 토큰 발행·블록체인 플랫폼 운영 등 블록체인 사업 경험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운영과 관련해서는 꾸준한 기술 고도화를 통해 안정성과 속도, 확장성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간 소액결제와 분산원장기술을 함께 활용해 시너지를 일으켜야 하는 일부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토큰부터 블록체인 서비스, CBDC까지…주도권 노리는 라인

이번 CBDC 영역 진출로 라인은 블록체인 산업 내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졌다. 블록체인 사업을 영위하는 경쟁 기업들은 규제당국 눈치를 보느라 성공적인 실사례를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인은 규제당국과 보폭을 맞추며 사업 확장을 노릴 전망이다.

라인은 ICO(가상화폐공개) 붐이 일었던 2018년부터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서비스를 함께 키워가는 전략을 펼쳐왔다. 라인은 2018년 당시 자체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가상자산 ‘링크’를 선보였다. 이후 산하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맥스의 일본 사업허가를 획득하고, 링크의 일본 내 유통 허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라인 메신저와 연동되는 가상자산 지갑을 출시하면서 소비자 유인책을 마련했다. 자체 가상자산과 이를 담을 거래소, 소비자 유인책(메신저 연동 지갑) 등으로 자체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든 셈이다.

블록체인 서비스 확장은 올해 본격 이뤄졌다. 최근 라인은 누구나 블록체인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 플랫폼 ‘라인 블록체인 디벨로퍼스’를 공개했다. 라인 블록체인 기반으로 돌아가는 블록체인 앱도 공개하면서 서비스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이제는 각국 중앙은행과 함께 CBDC를 개발해 규제당국과 보폭을 맞추고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라인 메신저와 페이는 일본과 동남아 국가에서 국민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며 "아시아 중앙은행은 소액결제용 CBDC 개발뿐 아니라 향후 활용처 확대시 라인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는만큼,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