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4년작 ‘초력로보 가랏트(超力ロボ ガラット)’는 개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슈퍼로봇 작품이다. 머리와 몸체가 잘 구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짜리몽땅 생활형 로봇이 멋진 전투 로봇으로 변신하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초력로보 가랏트. / 유튜브
초력로보 가랏트. / 유튜브
애니메이션은 지구 상에서 전쟁이 없어지고, 무기 소유가 일절금지된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주부동산을 운영하는 악덕 우주인 ‘도산'은 지구를 차지해 큰 돈을 벌기위해 지구침략을 시작한다. 하지만, 무기를 가지지 않은 지구 경찰은 악덕 우주인을 막아설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키우이 박사(가운데), 주인공 마이클(왼쪽), 여주인공 파티, 로봇 점프(오른쪽). / 반다이채널
키우이 박사(가운데), 주인공 마이클(왼쪽), 여주인공 파티, 로봇 점프(오른쪽). / 반다이채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미친 과학자’로 평가받는 키우이 박사는 연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인공 소년 마이클이 학교 통학에 사용하는 생활형 로봇 ‘점프'를 강제로 전투로봇 ‘가랏트'로 개조한다.

악덕 우주인 앞에 나타난 가랏트는 압도적인 힘으로 우주인들의 로봇을 차례차례 무찌른다. 하지만, 지구법 상 무기를 만들어 가지는 것은 불법이다. 키우이 박사는 경찰을 속이고, 자신도 돈을 벌기 위해 가랏트를 조종하는 것은 ‘정의의 우주인'이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키우이 박사 오직 자기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초력로보 가랏트. / 반다이채널
초력로보 가랏트. / 반다이채널
주인공 소년 마이클과 로봇 점프, 여주인공 파티와 가랏트2호 ‘파티그', 청년 카미르와 가랏트3호 ‘카미그'는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키우이 박사의 연구자금을 벌기 위해 악덕 우주부동산 우주인에 맞서 싸워 나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애니메이션 ‘초력로보 가랏트'는 ‘기동전사 건담'을 탄생시킨 선라이즈의 작품이다. 건담에서 연출을, ‘갓시그마', ‘다그람', ‘바이팜', ‘드라고나' 등의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감독을 맡았던 ‘칸다 타카유키(神田武幸)’가 진두지휘해 만들었다.

가랏트는 선라이즈의 직전 작품인 ‘은하표류 바이팜' 주요 제작진이 고스란히 참가했다. 바이팜이 소년소녀들의 우주전쟁 속 처절한 생존기를 그리는 등 진지한 내용을 담았던 것과 정반대로 가랏트는 누구나 웃고 즐길 수 있는 개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됐다.

로봇 점프와 마이클·파티. / 반다이채널
로봇 점프와 마이클·파티. / 반다이채널
짜리몽땅 로봇 점프가 전투로봇 가랏트로 변신하는 컨셉은 이후 ‘마신영웅전 와타루'와 ‘마동왕 그랑조트'로 계승된다. ‘바이팜'과 ‘초력로보 가랏트'의 작화감독을 맡았던 ‘아시다 토요오(芦田豊雄)’가 가랏트를 바탕으로 3등신 개그 슈퍼로봇 대표작 ‘마신영웅전 와타루' 캐릭터 원안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아시다 작화감독은 현지 잡지 월간아웃 인터뷰를 통해 "본격적인 개그 애니메이션 제작에 기획부터 참가한 것은 가랏트가 처음이었다. 당시 개그 컨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들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가랏트 시나리오는 ‘호시야마 히로유키(星山博之)’가 맡았다. 호시야마는 ‘무적초인 잠보트3’, ‘캡틴퓨처', ‘기동전사 건담', ‘무적로보 트라이더G7’, ‘마크로스', ‘바이팜', ‘패왕대계 류나이트' 등 애니메이션에서 각본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가랏트 메카닉 디자인은 ‘독수리오형제', ‘건담', ‘보톰즈', ‘자붕글', ‘드라고나', ‘가리안' 등 다수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주역 로봇 디자인을 완성시킨 ‘오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가 담당했다.

◇ 140㎝에서 9.8미터 크기로 변신하는 슈퍼로봇 가랏트

가랏트 로봇은 건담처럼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리얼로봇의 디자인을 추구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변신 구조로 인해 슈퍼로봇으로 분류된다.

사람보다 작은 높이 기준 140㎝ 크기에서 9.8미터 대형 로봇으로 변신하는 것 자체가 물리·과학은 물론 사실성을 무시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개그 애니메이션 특성상 사실성보다 허구성에 가까운 슈퍼로봇이 더 어울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초력로보 가랏트. / 유튜브
초력로보 가랏트. / 유튜브
가랏트 로봇은 주인공 마이클이 탑승하는 ‘점프'와 여주인공 파티가 조종하는 ‘파티그', 청년 카미르가 탑승하는 ‘카미그' 등 총 3대로 구성됐다. 이들 로봇은 인공지능(AI)을 내장하고 있어 스스로 판단해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형 로봇에서 전투로봇으로 변신하면 파일럿의 조종이 필요하다는 다소 역설적인 설정이 붙었다.

선라이즈 제작진들은 이런 역설적인 설정을 ‘로봇의 의식이 봉인된다'라는 설정을 더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생활형 로봇일 때는 AI에 의해 자아를 가지지만 전투로봇 가랏트로 변신하면 의식이 봉인되고 파일럿의 조종만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초력로보 가랏트 일러스트. / 야후재팬
초력로보 가랏트 일러스트. / 야후재팬
로봇이 변신하면 파일럿들의 옷도 함께 변한다.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변하는지에 대한 설명 따윈 없다. 이 역시 1970년대부터 이어진 정통파 슈퍼로봇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역 로봇은 ‘그루트'라는 중간형태가 존재한다. 생활형 로봇 모습 그대로 거대화되면서 파일럿이 탑승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루트 형태에서는 로봇 AI가 활성화된 상태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몸집은 커졌지만 힘도 전투능력도 그다지 없다.

점프 가랏트 액션 피규어. / 반다이스피리츠
점프 가랏트 액션 피규어. / 반다이스피리츠
그루트에서 가랏트로 변신할 때는 몸체를 뒤집는 방식을 취한다. 팔이 다리가 되고 다리가 팔로 바뀐다. 조종석에서 변신용 레버를 당기는 것으로 로봇 변신이 시작된다. 파일럿 전투복은 가랏트 로봇에 따라 고정돼 있다. 탑승하는 조종사가 바뀌어도 전투복 디자인은 같다.

점프 가랏트. / 야후재팬
점프 가랏트. / 야후재팬
주인공 마이클이 탑승해 조종하는 ‘점프 가랏트'는 9.8미터 크기로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와 비슷한 광선검(빔검)과 광선총 ‘가랏트 블래스터', 창 무기 ‘가랏트 쟈베린'을 사용해 우주 악당을 무찌른다.

파티그 가랏트. / 야후재팬
파티그 가랏트. / 야후재팬
여주인공 파티가 조종하는 ‘파티그 가랏트'는 9미터 크기이며, 변신무기 ‘파티그 암드 바리안티'를 사용한다. 또 점프 가랏트와 비슷하게 광선검과 광선총으로 적을 공격한다.

카미그 가랏트. / 야후재팬
카미그 가랏트. / 야후재팬
청년 카미르가 탑승하는 ‘카미그 가랏트'는 로봇의 다리가 백팩 부분과 바뀌는 형태로 변신한다. 크기는 앞서 소개한 두 로봇 보다 작은 8.8미터다. 저격용 장거리 광선총과 바주카 등의 무기를 사용한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