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블루투스 스피커 등 제품을 국내에 유통하려면 방송통신기자재 적합성평가(이하 적합성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업체가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서류로 제출한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크다. 정부는 해당 업체들에 대한 행정처분에 나설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국내·외 381개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가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통해 부정하게 적합성평가를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전파법 제58조의2에 따른 적합성평가는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제조‧판매‧수입업체가 기자재를 시장에 유통하기 전 기술기준(전파 혼‧간섭을 방지하고 인체나 기자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인증받거나 등록하는 제도다.

위조된 시험성적서(왼쪽)와 적법하게 발급된 시험성적서 비교 이미지 / 과기정통부
위조된 시험성적서(왼쪽)와 적법하게 발급된 시험성적서 비교 이미지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는 시험성적서 발급기관이 BACL(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시험 기관)로 표기된 시험성적서 중 일부가 미국이 아닌 중국에 위치한 BACL에서 테스트해 받은 것을 확인했다. 과기정통부는 5월 15일 관련 업체의 제보를 받은 후 조사에 착수했다.

시험성적서 발급은 전문 인력·설비가 들어가는 고도의 기술심사 능력이 필요하다. 법령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는 업무다. 국내 시험기관 지정 절차 또는 국가 간 상호인정협정(MRA)에 따라 지정된 시험기관(특정 시험소 명시)에 한해 시험성적서를 발급할 적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베트남, 칠레 등 5개국과 MRA를 맺었다.

과기정통부는 미국과의 MRA에 따라 국립표준연구소(NIST)의 지정 절차를 거쳐 미국 소재 BACL 시험소에 대해 시험권한을 부여했다. BACL은 미 캘리포니아주에 있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BACL 시험소는 MRA 대상 시험소가 아니다. 미국이 아닌 중국 BACL 시험소에서 받은 시험성적서는 효력이 없다. 여기서 받은 성적서를 문서로 제출할 경우 전파법 위반이 된다.

위조된 시험성적서가 제출된 흐름을 나타내는 이미지 / 과기정통부
위조된 시험성적서가 제출된 흐름을 나타내는 이미지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 소속 국립전파연구원(이하 전파연)은 미국 국립표준연구소 등의 협조를 통해 2006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소재 BACL이 발급한 시험성적서 전체 내역을 분석했다. 기존 업체들이 정부에 제출한 시험성적서의 진위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과기정통부 조사 결과 381개 업체의 적합성 평가에 이용된 1700건의 시험성적서가 미국 소재의 BACL에서 발급된 것이 아니었다. 전파법에 따라 시험성적서 위조 등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은 경우에는 적합성평가 취소 및 기자재 수거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적합성평가가 취소되면 취소된 날부터 향후 1년 간 적합성평가를 다시 받을 수 없고, 적합성평가를 다시 받기 전까지 해당 기자재는 제조·수입·판매 등을 할 수 없다.

이번에 적발된 곳은 국내외 다양한 기업이다. 대상 기기로는 ▲CCTV ▲블루투스 음향기기 ▲드론 ▲통신장비 ▲PC 주변기기 등이다.

과기정통부가 확인한 전파법 위반 업체 상위 20곳 리스트를 담은 표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가 확인한 전파법 위반 업체 상위 20곳 리스트를 담은 표 / 과기정통부
전파연은 행정처분을 목적으로 11월 10일부터 청문 실시에 따른 사전통지를 시작하고, 12월부터 381개 업체에 대한 청문을 순차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전파법에 따른 적합성평가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방송통신기자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의 시험을 통해 제품이 기술기준과 인체보호기준 등에 적합한지 여부를 평가하는 제도다"며 "시험성적서 위조는 방송통신기자재 전반의 신뢰를 훼손하는 심각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또한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상호인정협정 체결국과 협력해 시험성적서의 진위 확인절차를 강화할 것이다"며 "위조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