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의 요즘 행보가 거침없다. 차세대 CPU인 라이젠 5000시리즈가 정식 출시되고, 실제 성능에서도 더욱 진보한 모습을 보이며 소비자들의 기대감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1세대 라이젠 출시부터 3세대에 이르기까지 경쟁사를 넘어서지 못했던 ‘게임 성능’에서도 마침내 소폭이나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벗어낸 모양새다. 과거 AMD의 최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이 연상될 정도다.

그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이번에는 AMD가 인텔을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마침, 최근 발표한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드 라데온 RX 6000 시리즈도 엔비디아의 지포스 30시리즈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나면서 AMD가 CPU뿐 아니라 GPU에서도 ‘만년 2인자’에서 탈출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는 평이 나온다.

AMD 라이젠 9 5900X 프로세서 / AMD
AMD 라이젠 9 5900X 프로세서 / AMD
CPU 시장서 호재 맞은 AMD, ‘2인자 탈출’ 이번이 마지막 기회

CPU 시장에서 AMD는 시장 점유율에서 인텔을 넘어선 적이 없다. 태생부터 인텔의 CPU와 호환되는 여러 x86 프로세서 제조사 중 하나였던 만큼, 처음부터 인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2006년 전후만 하더라도, AMD는 자체 아키텍처 프로세서를 통해 업계 추산 40% 안팎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인텔을 맹렬하게 추격했었다. 그러나 이후 인텔의 ‘코어’ 시리즈 프로세서의 등장과, 자사의 차세대 프로세서 제품군의 잇따른 실패가 겹치면서 점유율 차이는 급격히 벌어졌다.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던 AMD는 2017년 절치부심 끝에 선보인 ‘라이젠’ 프로세서를 통해 회생에 성공했다. 그리고 매년 2세대, 3세대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성능도 인텔의 턱밑까지 쫓아왔고, 마침내 이번 4세대 제품에 이르러 드디어 성능에서 인텔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시장조사기관 머큐리 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AMD의 데스크톱 CPU 점유율은 1세대 라이젠 프로세서 출시 직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10% 미만이었다. 이후 2017년 라이젠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10% 점유율을 넘었고, 2020년 3분기 기준 22%를 돌파했다. 연평균 약 2.5%씩 상승한 셈이다.

하지만, 과거 시장 점유율이 40%대를 넘나들던 시기와 비교하면 20%를 겨우 넘어선 지금의 점유율은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다. ‘만년 2인자’를 탈출하려면 당장 왕년의 40%대 점유율까진 회복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AMD에게 호재다. 인텔이 여전히 차세대 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차세대 신제품 로드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AMD는 데스크톱 CPU는 물론, 데이터센터, 모바일(노트북) 부문에서도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 원격 수업, 게임 등의 용도로 PC 수요가 살아나면서 AMD CPU의 판매량도 덩달아 늘었다. 시장 점유율을 높여 2인자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차세대 DDR5 기반 제품이 등장하는 내년 말까지는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승산이 있다.

게이밍 GPU 시장도 추격 개시, 최대한 격차 줄여야

CPU 못지않게 경쟁사에 크게 뒤쳐졌던 게이밍 GPU(그래픽카드) 시장에서도 AMD는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AMD가 발표한 ‘라데온 RX 6000’ 시리즈는 엔비디아가 나름 회심의 역작으로 선보인 지포스 30시리즈에 대응하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앞서 선보인 라이젠 5000 시리즈 CPU의 성능이 예상 이상으로 잘 나오면서 라데온 RX 6000시리즈 GPU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엔비디아가 점령한 게이밍 그래픽카드 시장이 CPU 시장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경쟁 구도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커지는 중이다.

11월 18일 출시를 앞둔 AMD 라데온 RX 6000 시리즈 그래픽카드 / AMD
11월 18일 출시를 앞둔 AMD 라데온 RX 6000 시리즈 그래픽카드 / AMD
다만, 게이밍 GPU 시장의 2인자 탈출은 CPU 시장보다 더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충분히 검증된 CPU와 달리, 게이밍 GPU는 엔비디아와 크게 격차가 벌어진 이후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인 ‘RDNA2’로 재도전에 나서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7년 선보인 1세대 라이젠 CPU처럼 당장은 기술적으로는 인정을 받더라도 단기간에 약 7:3~8:2 수준으로 벌어진 점유율 차이를 좁히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게이밍 GPU 시장의 경쟁자는 엔비디아 말고 또 있다. 최근 GPU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 중인 인텔 역시 게이밍 GPU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GPU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급격히 성장하면서 인텔 역시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GPU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내친김에 CPU 내장 그래픽을 넘어선 게이밍 GPU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실제로 인텔은 ‘Xe 그래픽’이라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내세워 내장 GPU, 게이밍 GPU, 서버 및 데이터센터 GPU 등 시장을 본격적으로 노리는 중이다. 이미 노트북용 내장 그래픽 및 외장 그래픽 제품까지 출시한 상태다.

그런 만큼, AMD 역시 게이밍 그래픽 시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라데온 RX 6000시리즈가 예상한 것 이상의 역대급 성능으로 선보인 것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마침, 최근 고성능 게이밍 그래픽카드 시장은 CPU와 같은 이유로 지금의 AMD 입장에선 호재인 상황이다. 게이밍 수요의 급증으로 고성능 게이밍 GPU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게이밍 수요는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인 것도 AMD에겐 기회다.

실제로 앞서 선보인 엔비디아 지포스 30시리즈의 상위 모델은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판매 중이다. AMD의 라데온 RX 6000 시리즈가 그와 버금가는 성능에 ‘가격 대비 성능’까지 좋다면 크게 벌어진 시장 점유율도 단숨에 좁히는 게 가능할 전망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