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모빌리티 혁신 권고안이 택시 업계와 스타트업 업계 양 측의 갈등만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시 업계는 정부가 사실상 무분별하게 택시면허를 남발하는 처사라고 비난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권고안에 나온 기여금 수준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높다는 입장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택시와 플랫폼운수사업자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 IT조선 DB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택시와 플랫폼운수사업자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 IT조선 DB
11일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세종시 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가 ‘공짜 택시면허'를 허용한다며 모빌리티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정부가 플랫폼운송사업면허를 통해 ‘공짜 택시면허'를 내주려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권고안에서 택시 등을 포함한 모빌리티 사업에 투입되는 차량의 총량을 정하지 않은채 신규사업을 허용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감차'문제까지 언급돼온 택시업계 입장에선 이번 권고안이 생존을 위협하는 처사라는 것이 이들 입장이다.

조합은 입장문에서 "장기간 이어져온 사상 최악의 감염바이러스에 택시업계는 지금도 충분히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카풀과 렌터카 사태에 이은 택시 총량제를 벗어난 플랫폼사업면허 발급은 향후 무한 출혈경쟁을 부추겨 (운송업계의 상황이)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모빌리티 혁신 권고안, 플랫폼 사업자에 ‘매출 5%’ 수준 기여금 요구
총량 제한 없어 택시업계 ‘불안'

정부는 플랫폼 운송사업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여객자동차법 개정을 추진, 2021년 4월부터 시행령 등을 발효키로 했다. 정부는 ▲택시를 줄이는 만큼 플랫폼 업체의 영업을 허가하는 방식(플랫폼운송사업, 유형1) ▲택시가 가맹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플랫폼가맹사업, 유형2) ▲승객과 택시를 연결하는 중개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사업(플랫폼중개사업, 유형3) 등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중 유형1에 해당하는 플랫폼운송사업자는 일정 금액의 기여금을 내야 한다. 택시 감차와 혁신 등을 위한 발전기금 조성이 명목이다. 권고안은 플랫폼 사업자가 300대 이상 차를 운행할 경우 ▲매출의 5% ▲운행횟수당 880원 ▲월정액 40만원 중 선택해 납부토록 했다. 300대 미만을 허가 받은 기업은 기여금을 차감해주고, 100대 미만을 보유한 사업자는 2년간 기여급 납부가 유예된다.

동시에 ‘총량제'는 정하지 않았다. 택시 감차에 맞춰 플랫폼사업자에게 차량 대수를 허가하려던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대신 위원회는 심의위원회를 설치, 이들이 총 허가 대수를 관리하도록 권고했다.

3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플랫폼 운송사업 제도화 방안 인포그래픽 / 국토교통부
3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플랫폼 운송사업 제도화 방안 인포그래픽 / 국토교통부
택시업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번 권고안에 ‘총량제'가 사라진 점이다. ‘타다 사태' 이전부터 택시업계는 택시 과잉공급 문제에 시달렸다. 이동수요보다 택시가 많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돼서다. 택시업계에 따르면 전국 법인택시의 가동률은 50~60%대다. 법인택시 중 절반 정도가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주차장에서 놀고 있는 상황이다.

택시업계가 신규 여객운송 사업자가 등장할 때마다 ‘결사반대'를 외친 배경이다. 지금도 차가 너무 많은데 새로 경쟁자가 시장에 나오면 경영상황이 악화될 것이 뻔하다고 택시업계는 목소리를 높인다.

스타트업 업계 "권고안 기여금대로면 사업 할 수 없어"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권고안에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간 ‘정부실패'로 여겨진 택시감차 문제를 신규 사업자들이 왜 책임져야하는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스타트업 속내다. 여기에 권고안대로 기여금을 부담할 경우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이들은 우려한다.

혁신위는 해외사례를 참조해 기여금을 책정했다. 혁신위에 따르면 미국 뉴욕시는 건당 약 8.8%, 샌프란시스코는 건당 3.25%,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 주는 건당 1호주달러(약 800원)을 플랫폼 사업자가 부담한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내와 해외 여객운송 사업 환경이 달라 신규 사업자들의 부담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국내 업체들이 감당할 만한 기여금 수준을 운행횟수 당 300원 미만으로 봤다. 국내 업체들은 해외 기업들과 달리 사업 시작부터 차를 직접 매입하고 기사를 모집하고 기여금까지 내는만큼 부담이 훨씬 크다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코스포는 권고안 발표 후 성명을 통해 "국내 플랫폼 운송사업자는 해외시장의 '우버'와 달리 차량·기사·기여금 세 가지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며 "권고안은 기여금 부담을 비현실적으로 가중했다. 스타트업들이 초기에 잘 시작하더라도 성장할수록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라고 비판했다.

플랫폼 기업들은 ‘기여금 면제' 조항이 삭제된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모빌리티 혁신안 논의 당시 정부가 일정규모(99대 미만)를 넘지 못하는 사업자에 대해 기여금 면제를 약속했는데, ‘2년 유예'로 바꾸면서 초기 스타트업 부담이 가중돼서다.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현재 권고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사업방식은 가맹업(유형2)인 것으로 본다. 기여금 부담도 없는데다 택시업계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택시 운행률을 높이는 것이 고민인 정부 및 택시업계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떨어진다.

가맹업의 혁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가맹사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구조 상 가맹사업은 플랫폼 사업자가 ‘을'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라며 "초기에 진출한 카카오T 등과 달리 택시업계에서 스타트업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한데다, 혁신 동인이 적은 현실에서 플랫폼가맹사업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