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최근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 협력사로서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LG화학은 테슬라에 모델3용 배터리를 공급 중이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에서는 LG화학이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를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경쟁사인 파나소닉이 테슬라와 굳건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전기차 빅 플레이어의 등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테슬라와 파나소닉은 10년 넘게 ‘배터리 동맹’을 맺었다고 불릴 만큼 두터운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테슬라가 초기 성장통을 겪을 때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투자한 곳도 파나소닉이다.

1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제아무리 테슬라와 연합전선을 강화해도 2·3위 공급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는 곧 파나소닉의 시장 지위 상승을 뜻하는 셈인데, 이를 LG화학이 반길리 없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9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 프리몬트 공장 주차장에서 진행 중인 배터리 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유튜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9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 프리몬트 공장 주차장에서 진행 중인 배터리 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유튜브
LG화학은 2019년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3 공장의 배터리 납품사로 선정됐는데, 당시 테슬라와 파나소닉의 관계가 와해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파나소닉은 6월 미국 네바다주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를 3년 더 공급하기로 테슬라와 약속했다. 파나소닉은 이번 계약을 위해 기가팩토리에 16억달러(1조7800억원) 투자에 나섰다. 파나소닉은 최근에도 테슬라의 ‘4680(지름 46㎜ x 높이 80㎜) 배터리’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파나소닉은 테슬라가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 시점부터 10년 이상 두터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며 "LG화학도 테슬라의 중요 협력사 중 하나지만, 기술 격차가 확연히 벌어지지 않는 한 파나소닉의 지위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테슬라는 1~8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24.7%로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같은 기간 19.4%에서 5.3%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2위 르노·닛산·미쓰비시 동맹(10.2%)과 3위 폭스바겐그룹(9.3%) 대비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테슬라에 대한 배터리 납품 여부에 따라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자리가 뒤바뀐다.

LG화학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 LG화학
LG화학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 LG화학
하지만 최근 대량생산 노하우가 무기인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에 도전하며 위협한다. 현대자동차와 폭스바겐, GM, 포드 등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의 전기차로 전환이 속도가 붙을 경우 테슬라의 독주가 멈출 수도 있다.

현대차는 8월 E-GMP 기반의 순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공개했고,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2021년 레트로풍 CUV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2022년 콘셉트카 ‘프로페시’ 기반 중형 세단 ‘아이오닉 6’, 2024년에는 대형 SUV ‘아이오닉 7’을 시판한다.

폭스바겐은 9월 말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합작회사인 중국제일자동차그룹(FAW),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JAC모터스 등과 함께 2024년까지 5년간 총 150억유로(20조원)를 전기차에 투자한다. 10월부터 전기차 전용 공장 두곳에서 연간 60만대를 생산한다.

GM은 2019년 3월부터 미국 내 3개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 준비를 위해 45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2023년까지 세계에서 최소 20개 새 전기차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포드는 2022년까지 115억달러(13조628억원) 이상을 전기차에 투자하기로 했다. 9월 디트로이트 인근 디어본에 스테디셀러인 F-150의 전기차 모델 제작을 위한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F-150 순수 전기 픽업트럭은 2022년 2분기 내 미국에서 우선 출시된다.

이들과 같은 다수의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에 파우치형 배터리를 채택했다. 원통형 배터리를 쓰는 곳은 테슬라, 재규어, 루시드모터스, 리비안 정도다. 전기차 배터리는 크게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으로 나뉜다. 파우치형은 무게가 가겹고 에너지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낼 뿐 아니라 형태 다양화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LG화학의 주력 제품 역시 원통형이 아닌 파우치형이다. 150조원에 달하는 고객사 수주잔고 대부분은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으로 매출화 할 예정이다. LG화학의 글로벌 시장 위상이 커지려면 비중이 높은 파우치형 배터리 양산이 우선이다.

테슬라가 배터리 내재화를 목표로 하는 점도 껄끄럽다. LG화학이 테슬라에 공급을 의존하기 보다는 다른 유럽·미국 완성차로 공급을 다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9월 22일(현지시각) 배터리 데이를 하루 앞두고 LG화학, 파나소닉 등 협력사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향후 배터리 내재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사들이 빠른 속도로 생산을 늘리고 있음에도 우리 스스로 배터리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022년엔 심각한 공급 부족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