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 생산 설비인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됐다는 소식이 화제다. 커뮤니티를 통해 살펴보니 정말 최저가 기준 7200원이다. 어쩌다 알리에서 판매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을까.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뚜렷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 중국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일어섬)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중국은 세계 LCD 시장에서 ‘치킨게임’을 주도하며 한국 기업 몰아내기에 성공했다. 2014년 6월 1조위안(약 170조원) 투자를 발표한 중국 정부는 반도체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를 쓰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기는 커녕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칭화유니그룹이 회사채 상환 실패로 부도 위기에 놓였다.

결정타는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미 정부의 수출 제재였다. 반도체는 소자 공학부터 회로설계, 공정장비까지 미국의 지식재산권으로 이뤄진 업종이다. 중국은 기반이 되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원천 기술이 없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게 마땅찮다.

막무가내식 투자도 실패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반도체 육성 정책에 많은 기업이 부실·중복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를 내걸고 대규모 보조금을 받아 ‘먹튀’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중국 우한시에 위치한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우한홍신반도체제조(HSMC)가 대표적인 예다. HSMC는 2017년 11월 설립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1280억위안(21조55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하고, 중국 최초로 7나노미터 공정 양산을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 회사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의 최고 운영책임자(COO) 출신 장상이(蔣尙義)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HSMC는 돌연 자금난을 발표하며 공장 설립을 중단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2년동안 공장을 세운 축구장 59개 크기(42만4000㎡) 부지에는 골격만 겨우 완성한 건물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2014년 10%대 수준의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5%까지 끌어올린다는 중국의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6%에 그쳤다. 2020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분위기다.

‘눈먼 돈’에 무너진 중국 반도체 굴기는 우리에게 다행스런 일이지만 반면교사(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 삼을 필요도 있다. 기본을 갖추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비용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공들여야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분야다. 공정 기술과 장비 기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경쟁사에서 인력을 빼오고, 편법으로 큰돈만 쏟아붓는다고 단기간 내 상위업체를 따라잡을 수 없다. 꾸준함이 최고의 비결이다. 지난해 4월 삼성전자가 11년 뒤인 2030년에야 TSMC를 제치고 시스템반도체 1위를 거머쥐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만큼 따라붙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안주하면 뒤쳐질 수 있다는 교훈도 잊지 말아야한다. 최근 메모리 분야에서 마이크론의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 소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낸드 시장 점유율 6위임에도 굴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차분히 틈새를 공략한 마이크론의 힘이다. ‘초격차’ 확보의 중요성을 새삼 보여주는 사례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