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사람의 입맛만큼 변덕스러운 것도 없다고 말한다. 매년 수많은 신제품이 출시되지만 실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아 오랫동안 사랑 받는 제품은 손에 꼽힐 정도다. 하지만, 강산이 네 번 변했을 법한 세월 동안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업계 선두를 달리는 장수 제품이 있다. 바로, 출시 46주년을 맞은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다. 바나나맛우유의 성공 스토리가 코로나19 불황기에 다시 한번 주목 받고 있다.

바나나맛우유. /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 빙그레
◇ 유가공 산업의 기초를 일구다

빙그레의 전신은 대일유업이다. 1967년에 설립돼 월남에 진출해 미군부대를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납품 중이던 대일유업은 남양주군 일대에 젖소가 많다는 사실에 착안하고 미금면 도농리(지금의 빙그레 남양주공장)에 유제품 가공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유제품이 아닌 설탕물을 얼린 빙과류가 호황을 누릴 때였다. 유제품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도 없었거니와 생산원가도 비싸서 우유 성분을 넣은 진짜 아이스크림은 시판되는 것이 없었다.

퍼모스트 우유·아이스크림 신문지면 광고. / 빙그레
퍼모스트 우유·아이스크림 신문지면 광고. / 빙그레
대일유업은 미국 퍼모스트 메케슨사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AID 차관 95만달러를 들여와 제조 시설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건설 도중에 자금 사정이 안 좋아져서 부도를 내게 되고 투자자를 찾게 된다. 신규사업을 모색 중이던 한국화약그룹(현 한화)은 현찰 거래인 데다가 자금회전이 빠르고 수익성도 높은 편인 식품업 진출을 검토하게 된다.

당시 한국화약그룹은 ‘기간산업을 일으켜서 국가사회에 기여하자’는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뜻에 따라 화약 등 기간산업 육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을 때여서 검토 초기에는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아 도는 우유를 처리하지 못해 젖소를 키우는 낙농가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 완공에 필요한 자금 지원선에서 투자를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화약그룹의 투자 이후에도 공장 건설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한국화약그룹은 1973년 대일유업의 주식 50%를 인수하게 된다.

1982년 사명 변경 당시 신문지면 광고. / 빙그레
1982년 사명 변경 당시 신문지면 광고. / 빙그레
이후 ‘전천 후 영양식’,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퍼모스트 아이스크림이 시중에 선을 보인 것은 1973년 6월 6일이었다. 출시되자마자 퍼모스트 아이스크림은 싱싱한 우유에 딸기와 초콜릿, 바나나 등을 배합한 유제품으로서 감칠 맛을 자랑하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한국 유가공 산업의 토대를 만든 대일유업은 이후 1982년 ‘빙그레’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1995년 계열 분리 후 지금의 빙그레가 되었다.

◇ 한국적 용기 모양에 고급 과일 바나나와 우유를 넣다

1970년대 초반 정부가 우유 소비를 적극 장려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흰 우유에 대해 정서적이나 신체적으로 거부 반응을 나타내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낙농 산업 자체 기반도 취약했다.

한국화약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은 평소 신념인 ‘기업을 통한 사업보국’과 ‘국민생활건강’의 실천을 강조했고, 당시 연구팀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우유를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 연구팀은 고급 과일이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바나나를 우유에 넣기로 하고 개발에 성공한다. 바나나맛우유는 당시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를 이용해 맛과 영양을 함께 갖추어 한국 가공우유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현재,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바나나우유시장에서 80%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80만개쯤이 팔리고 있다. 2019년 기준 매출액은 수출을 포함해 2000억원에 이르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바나나맛우유가 40년 넘는 기간 동안 장수 브랜드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비결은 변함없는 맛과 영양을 유지해 온 것도 있지만, 바나나맛우유 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용기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바나나맛우유는 통통하고 배불뚝이 모양의 독특한 용기모양 덕분에 소비자의 기억 깊숙이 각인됐다는 것이다.

빙그레에 따르면 배불뚝이 용기모양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철저한 기획과 전략이 바탕이 됐다. 용기 차별화를 시도하던 개발 담당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고급 제품인 만큼 기존에 흔히 사용되던 비닐 팩이나 유리병과는 차별화 된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다.

빙그레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우유 용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기존 유리병과 비닐 팩과 차별화 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폴리스티렌을 이용해 만든 지금의 용기이다.

용기 재질이 결정되었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뒤따랐다. 개발팀은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당시 고급 과일인 바나나를 넣은 바나나맛우유이기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용기의 외형을 고집했다.

빙그레 개발팀은 우연히 도자기 박람회를 찾았다가 한국 고유의 전통 ‘달 항아리‘를 보고 영감을 얻게 된다. 달 항아리를 우유 용기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배불뚝이 모양의 용기가 탄생했다.

이 용기는 46년간 소비자의 기억 깊숙이 각인되면서 이제는 바나나맛우유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또 마실 때 부주의로 용기가 약간 기울더라도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입구 부분에 턱을 만들고, 바나나 원물의 노란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내용물을 단순히 담기에 급급했던 당시 분위기에서 기능과 모양, 컬러 그리고 한국적 정서까지 고려한 획기적인 포장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바나나맛우유의 용기는 바나나맛우유의 상징이 되었다. 제품 용기 디자인이 바로 상표이자 브랜드인 셈이다.

빙그레에 따르면 바나나맛우유 용기는 다른 용기들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더 든다. 흔히 사용하는 사출이나 압착 방식이 아닌 분리된 상, 하컵을 고속 회전시켜 마찰열로 접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현재는 해당 설비 제조사가 없어졌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용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빙그레 뿐이다. 빙그레는 2016년에 바나나맛우유 용기모양 자체를 상표권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 바나나맛우유, 식품업계 혁신의 아이콘이 되다

바나나맛우유는 빙그레의 재도약을 이끌고 있다. 2019년 기준 회사 전체 매출의 24%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실적 개선의 효자 노릇을 했다. 혁신적인 마케팅이 성과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옐로우카페. / 제주관광공사
옐로우카페. / 제주관광공사
바나나맛우유를 테마로 한 빙그레 최초의 테마형 카페 ‘옐로우카페’는 빙그레 마케팅 혁신의 출발점이다. 바나나맛우유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였지만 Z세대 새로운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앞으로의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하는 만큼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빙그레는 Z세대가 직접 제품을 체험하고 친숙하게 할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체험형 카페, 옐로우 카페를 탄생시켰다. 2016년 개점한 옐로우카페는 속칭 대박을 쳤다. 모든 카페 메뉴에 바나나맛우유를 사용하는 것도 화제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MD상품으로 준비했던 ‘열쇠고리’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음료 메뉴 개발에는 빙그레 식품연구소 연구원들이 6개월간 참여했다. 옐로우카페 동대문점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 제주도에 10배 큰 규모로 옐로우카페 제주점을 개점했다.

2017년 진행한 ‘마이스트로우 캠페인’은 빙그레 마케팅 혁신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소비자들이 바나나맛우유를 취식할 때 스트로우(빨대)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만이 갖고 싶은 스트로우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마이스트로우 캠페인은 ‘마이스트로우’ 영상 5편의 누적 조회 수가 3000만뷰를 넘어서는 등 화제를 모았다.

‘링거 스트로우’ 등 3종은 출시 일주일 만에 3만개가 전량 매진됐다. 소비자들의 요청에 따라 추가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 빙그레는 당초 ‘SOS 스트로우’ 출시 계획이 없었으나 해당 영상을 본 소비자들의 출시 요청이 잇따르자 실제 제품으로 제작해 출시하기도 했다. 빙그레에 따르면 스트로우 4종은 지금까지 총 10만개가 판매됐다.

애플시나몬맛우유. / 빙그레
애플시나몬맛우유. / 빙그레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단지가궁금해’ 시리즈 마케팅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빙그레의 ‘단지가궁금해’ 시리즈는 바나나맛우유의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은 색다른 우유를 출시하는 제품이다.

1년간 출시 준비 과정에서 100가지 과일과 우유를 조합해 테스트 했다. 2018년 첫 번째 제품 오디맛우유 출시에 이어 겨울 한정판으로 귤맛우유를 출시했다. 두 제품 모두 온라인 SNS 상에서 구매 인증 게시물을 통해 많은 소비자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오디맛우유는 출시 8개월만에 누적판매 900만개, 50억원의 매출을 올려 신제품으로서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이어 연이어 출시한 귤맛우유, 바닐라맛우유, 호박고구마맛우유, 캔디바맛우유 역시 소비자들의 좋은 호응을 얻었다.

빙그레는 최근 일곱 번째 한정판 제품인 ‘애플시나몬맛우유’를 출시했다. 애플시나몬맛우유는 선선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향긋한 시나몬 향과 달콤한 사과의 맛을 구현했다. 제품 패키지에 빨간색 사과 그림 문자를 삽입해 계절 느낌을 살렸다. 최근 홈 카페 트렌드가 확산됨에 따라, 소비자가 애플시나몬맛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 애플시나몬라떼를 직접 만들어 즐기거나, 취향에 따라 시나몬 파우더나 말린 과일을 얹어서 음용하는 등 애플시나몬맛우유를 활용한 다양한 홈카페 레시피 응용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 지구 환경 보호 캠페인 펼치고 시즈널 에디션 선보여

빙그레는 가수 ‘아이유’를 바나나우유 모델로 기용해 친환경 캠페인 ‘지구를 지켜바나나’를 진행했다. 캠페인 ‘지구를 지켜바나나’는 최근 떠오르는 사회적 주제인 친환경과 관련된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아이유. / 빙그레
아이유. / 빙그레
빙그레 마케팅 관계자는 "환경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모두에게 친숙한 바나나맛우유와 아이유의 협업을 통해 환경 보호 메시지를 재미있게 전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빙그레는 최근 친환경 캠페인 ‘지구를 지켜 바나나’ 오프라인 활동으로 ‘단지 세탁소’ 문을 열기도 했다. ‘단지 세탁소’는 재활용할 수 있는 용기들이 내용물에 오염되어 재활용률이 떨어진다는 데서 착안해 ‘씻어서 분리배출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기획됐다. 7월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가수 아이유가 모델로 등장해 바나나맛우유 용기를 씻어서 배출하는 ‘단지 세탁기’가 등장한 바 있다.

단지 세탁소 친환경 캠페인. / 빙그레
단지 세탁소 친환경 캠페인. /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2016년부터 매 겨울마다 시즈널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다. 컨셉은 ‘요술단지’다.

요술단지 제품은 바나나맛우유 상표가 인쇄되는 자리에 요술단지 ARS 전화번호(1670-2182)가 인쇄된다. 해당번호로 전화를 걸면 안내 멘트에 따라 2021년 새해 소원을 녹음할 수 있다. 녹음 후에는 본인이 입력했던 휴대전화에 소원에 대한 요술단지의 답을 문자로 받을 수 있다.

요술단지 프로모션은 코로나19로 한 해동안 고생했던 소비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새로운 해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빙그레는 요술단지 ARS 이 외에도 국내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방송 등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11월말에는 멀티팩 구매자를 대상으로 행운번호 추첨해 경품을 제공하는 요술단지 행운번호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1974년 출시한 바나나맛우유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 대표 스테디셀러 제품으로 고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 국내 시장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며 "항상 소비자들께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로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