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을 놓고 유럽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폭스바겐과 손잡은 스웨덴 노스볼트, 독일 바르타, 영국 브리티시 볼트 등 유럽 배터리 제조사는 한·중·일 3국이 이끄는 배터리 시장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다. 최근 유럽연합(EU)도 유럽이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를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만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놔 배터리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유럽 배터리 공장이 2025년 전기차 600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양을 생산할 것이라는 보도와 함께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부집행위원장의 말을 근거로 들었다. 세프초비치 부집행위원장은 배터리 관련 온라인 회의에서 "EU는 2025년 유럽 자동차 업계 수요에 맞는 배터리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스볼트 공장 조감도/ 노스볼트
노스볼트 공장 조감도/ 노스볼트
유럽 전역이 배터리 제조 인프라 확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글로벌 완성차 시장을 이끄는 폭스바겐, BMW 등 유럽 자동차 기업의 동아시아 배터리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2020년 차량 판매 시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2019년 대비 두 배쯤 증가할 전망이다. 유럽의 전기차 시장 규모가 확장할수록 한중일 배터리 업체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분석한 1~9월 글로벌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 순위를 보면, 1~10위에는 한중일 출신 업체가 차지했다. 이들 10개 기업의 1~9월 배터리 사용량은 83기가와트시(GWh)로 2019년 동기(81.9GWh) 대비 소폭 늘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유럽 각국이 최근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들의 전기차에는 LG화학, 파나소닉, CATL 등이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다"며 "탈(脫) 한중일을 위한 유럽 전기차 배터리 업계의 내재화 움직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고 말했다.

노스볼트는 BMW, 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의 전폭 지원과 한국과 일본의 핵심인력 스카웃을 통해 한·중·일 배터리 기업과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노스볼트는 2016년 설립 이후 36억달러(4조2000억원)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7월 수출입은행과 유럽투자은행, 북유럽투자은행 등 글로벌 금융기관 컨소시엄에서 16억달러(1조8000억원)를 투자 받았다. 유럽투자은행은 4억유로(4600억원) 이상을 대출해줬다. 노스볼트는 2019년 폭스바겐·골드만삭스·이케아·BMW로부터 투자를 받아 스웨덴에 배터리 생산단지를 건설했다. 2024년까지 최소 34GWh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독일 소형 배터리 업체 바르타는 정부 등으로부터 3억유로(4200억원)을 지원받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영국 배터리업체 브리티시 볼트는 영국 내 40억파운드(6조1900억원)을 들여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프랑스 배터리 업체인 베르코어도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

유럽 배터리 업계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은 중국에 이어 유럽 시장을 겨냥하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시장 확장을 위협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EU가 자체 생산 가능하다는 배터리 중 상당 부분은 한중일 기업의 유럽 증설이 포함된 수치다"라며 "성능을 키우고 안전성을 높인 배터리 신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에 승부가 갈리겠지만, 시작 단계에 있는 유럽 기업이 단기간 한중일 기업을 따라잡는 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