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테크] 미사일 대신 골프 볼 추적하는 ‘오렌지 박스’

김세영 기자
입력 2020.12.05 06:00
덴마크의 한 창고에서 탄생한 트랙맨…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
도플러 레이더가 초당 4만개 샘플을 수집하며 6초 동안 추적

덴마크의 클라우스 엘루프 예르겐센은 국가대표를 거쳐 유러피언 투어에 참가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골퍼였다. 부모의 권유로 사업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의문을 가졌다. 수많은 골퍼들이 샷을 하고 볼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지만, 왜 그렇게 날아가는지 추측만 할뿐 사실은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클라우스는 덴마크의 세계적인 군사 레이더 회사를 찾아갔다. 그곳은 미사일과 포탄을 추적하는 데 사용되는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연구진들은 레이더 기술과 골프를 접목하면 좋겠다는 클라우스의 아이디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명은 달랐다. 레이더 과학자로 핸디캡 5의 골프 실력을 가졌던 프레드리크 툭센이었다.

오렌지색 박스 형태의 트랙맨 기기와 측정된 데이터의 가상 이미지. 트랙맨은 클럽의 헤드 스피드, 볼 스피드, 탄도, 비거리 등 각종 실측된 데이터를 제공한다. / 트랙맨
몇 주 후 프레드리크는 직장을 그만두고 클라우스와 함께 창고에서 레이더를 사용한 골프 볼 추적 장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오렌지색의 박스 형태를 가진 ‘트랙맨’은 그렇게 약 2년의 연구 끝에 탄생했다. 이전까지의 장비들은 골프 볼이 어떤 궤도로 얼마쯤 날아갔을 것이라는 추측 값을 내놨지만, 트랙맨은 볼의 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 알려줬다.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클라우스와 프레드리크는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주요 5개 업체인 나이키, 핑, 테일러메이드, 캘러웨이, 미즈노 등을 방문했다. 사실 이들 업체의 담당자와 미팅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캘러웨이를 방문했을 때는 담당자 딱 한 명이 나와 "15분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제품 시연을 본 뒤에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잠시 후 20명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전까지 제조사들은 볼이 떨어지는 지점을 사람이 확인하고 그곳까지의 거리를 레이저로 측정했다. 또는 레인지 바닥에 수백 개의 마이크를 설치한 뒤 볼이 떨어지는 소리를 이용해 낙하지점까지의 거리를 쟀다. 각 업체들은 클럽과 볼을 설계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볼 추적 기술을 개발하는 팀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했지만 트랙맨이 나온 이후에는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트랙맨 레이더(왼쪽)와 광학 론치 모니터가 샘플을 추출하는 가상의 이미지. 트랙맨 레이더는 무릎부터 임팩트를 거쳐 다시 무릎 높이까지 0.1초 동안 4000개의 샘플을 추출한다. 광학 카메라는 이보다 훨씬 짧은 0.01초 동안 40개의 이미지를 캡처한다. / 트랙맨
트랙맨이 신뢰도 높은 측정값을 제공하는 기술의 근본은 레이더와 광학 카메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레이더를 사용하는 트랙맨은 초당 4만개의 샘플을 수집하는 속도로 볼이 날아가는 순간부터 떨어질 때까지 약 6초 동안 추적한다. 임팩트가 이뤄지는 무릎-임팩트-무릎으로 이어지는 0.1초의 구간 동안에는 4000개의 샘플을 추출한다.

이에 비해 광학 카메라는 초당 4000프레임을 찍는다. 레이더의 10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광학 카메라의 볼을 추적하는 시간은 훨씬 더 짧다. 임팩트 구간을 0.01초 미만으로 찍기 때문에 실제 캡처하는 이미지는 40개에 불과하다. 시간을 더 압축해 극단적인 임팩트 순간 트랙맨이 20개의 샘플을 추출할 때 광학 카메라는 1~2개의 이미지를 찍는다.

트랙맨에는 도플러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 도플러 방식은 전파가 가까워질수록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걸 말한다. 별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등 우주의 비밀을 풀 때도 사용되고, 일상에서도 도플러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급차가 다가올 때는 ‘삐요삐요’ 소리가 더 커지면서 빈도도 빨라지지만, 멀어질 때는 점점 작아지면서 빈도가 줄어든다.

트랙맨에 사용되는 도플러 레이더의 가상 이미지. 도플러 방식은 전파가 가까워질수록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걸 말한다. / 트랙맨
골프 볼의 비행에서 가장 요소 중 하나는 스핀이다. 스핀의 양과 방향은 볼의 탄도와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약 2500rpm(분당 회전수) 정도를 적절한 드라이브 샷의 백스핀 양으로 보는데 100rpm의 차이만으로도 탄도, 비거리가 영향을 받는다.

도플러 레이더는 이 스핀 양을 어떻게 측정할까. 레이더가 골프 공 뒤에 설치돼 있다고 가정하면 볼의 상단은 공의 중심과 비교해 레이더 쪽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볼의 하단은 공의 중심과 비교해 레이더에서 멀어진다. 이런 차이를 통해 볼의 속도와 스핀 양을 측정하는 것이다.

트랙맨은 기본적으로 계산이 아닌 측정 결과를 보여주지만, 실내에서는 스크린까지 볼이 날아간 것을 실측한 뒤 계산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비결은 그동안 실외에서 실측한 축적 데이터가 풍부한 덕분이다. 각종 샷 데이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쌓이고 있다. 6월 기준으로 6억개쯤의 빅데이터가 있다.

자신들이 개발한 트랙맨을 들고 있는 프레드리크 툭센(왼쪽)과 클라우스 엘루프 예르겐센. / 투데이스골퍼
레이더는 이제 미사일과 포탄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군사 분야부터 항법, 의료, 그리고 테슬라로 대변되는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우리 생활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의 한 창고에서 탄생한 트랙맨도 골프 볼 추적과 계측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 기업으로 성장했다. 클라우스는 최고경영자(CEO), 프레드리크는 최고기술책임자(CFO)가 됐다. 거의 모든 골프 장비 제조회사가 고객이고, 주요 골프 선수들이 트랙맨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습을 한다. 영역도 야구, 축구, 미식축구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다시 트랙맨을 개발하던 시기로 눈을 돌려보자. 클라우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레이더 회사를 찾아갈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까. 또 프레드리크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앞날이 불투명한 도전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 생각을 머릿속에만 가둬두고 있으면 꿈은 그저 꿈에 머문다. 실행력과 배포가 있어야 현실이 된다.

김세영 기자 sygolf@chsosunbiz.com


T조선 뉴스레터 를 받아보세요! - 구독신청하기
매일 IT조선 뉴스를 받아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