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한 창고에서 탄생한 트랙맨…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
도플러 레이더가 초당 4만개 샘플을 수집하며 6초 동안 추적
덴마크의 클라우스 엘루프 예르겐센은 국가대표를 거쳐 유러피언 투어에 참가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골퍼였다. 부모의 권유로 사업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의문을 가졌다. 수많은 골퍼들이 샷을 하고 볼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지만, 왜 그렇게 날아가는지 추측만 할뿐 사실은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클라우스는 덴마크의 세계적인 군사 레이더 회사를 찾아갔다. 그곳은 미사일과 포탄을 추적하는 데 사용되는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연구진들은 레이더 기술과 골프를 접목하면 좋겠다는 클라우스의 아이디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명은 달랐다. 레이더 과학자로 핸디캡 5의 골프 실력을 가졌던 프레드리크 툭센이었다.
클라우스와 프레드리크는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주요 5개 업체인 나이키, 핑, 테일러메이드, 캘러웨이, 미즈노 등을 방문했다. 사실 이들 업체의 담당자와 미팅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캘러웨이를 방문했을 때는 담당자 딱 한 명이 나와 "15분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제품 시연을 본 뒤에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잠시 후 20명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전까지 제조사들은 볼이 떨어지는 지점을 사람이 확인하고 그곳까지의 거리를 레이저로 측정했다. 또는 레인지 바닥에 수백 개의 마이크를 설치한 뒤 볼이 떨어지는 소리를 이용해 낙하지점까지의 거리를 쟀다. 각 업체들은 클럽과 볼을 설계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볼 추적 기술을 개발하는 팀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했지만 트랙맨이 나온 이후에는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이에 비해 광학 카메라는 초당 4000프레임을 찍는다. 레이더의 10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광학 카메라의 볼을 추적하는 시간은 훨씬 더 짧다. 임팩트 구간을 0.01초 미만으로 찍기 때문에 실제 캡처하는 이미지는 40개에 불과하다. 시간을 더 압축해 극단적인 임팩트 순간 트랙맨이 20개의 샘플을 추출할 때 광학 카메라는 1~2개의 이미지를 찍는다.
트랙맨에는 도플러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 도플러 방식은 전파가 가까워질수록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걸 말한다. 별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등 우주의 비밀을 풀 때도 사용되고, 일상에서도 도플러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급차가 다가올 때는 ‘삐요삐요’ 소리가 더 커지면서 빈도도 빨라지지만, 멀어질 때는 점점 작아지면서 빈도가 줄어든다.
도플러 레이더는 이 스핀 양을 어떻게 측정할까. 레이더가 골프 공 뒤에 설치돼 있다고 가정하면 볼의 상단은 공의 중심과 비교해 레이더 쪽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볼의 하단은 공의 중심과 비교해 레이더에서 멀어진다. 이런 차이를 통해 볼의 속도와 스핀 양을 측정하는 것이다.
트랙맨은 기본적으로 계산이 아닌 측정 결과를 보여주지만, 실내에서는 스크린까지 볼이 날아간 것을 실측한 뒤 계산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비결은 그동안 실외에서 실측한 축적 데이터가 풍부한 덕분이다. 각종 샷 데이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쌓이고 있다. 6월 기준으로 6억개쯤의 빅데이터가 있다.
다시 트랙맨을 개발하던 시기로 눈을 돌려보자. 클라우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레이더 회사를 찾아갈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까. 또 프레드리크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앞날이 불투명한 도전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 생각을 머릿속에만 가둬두고 있으면 꿈은 그저 꿈에 머문다. 실행력과 배포가 있어야 현실이 된다.
김세영 기자 sygolf@chs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