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중소기업 급여" 모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직원이 최근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올린 회사 관련 평가다. 이 글의 댓글로는 ‘급여가 너무 적고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급여에 별 차이가 없다’ ‘40대 후반이 되더라도 계약 연봉 8000만원이 안 될듯 하다’ 등 불만이 이어졌다.

K배터리 고급인력 관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K배터리 출신 주요 인사는 이미 중국 배터리 기업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배터리 기업으로 변신 중인 중국 최대 부동산그룹 ‘헝다(恒大)’는 7일 최근 설립한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을 공개하며 연구원을 방문한 쉬 자인 회장을 이모 연구원장(전 현대모비스 전무) 등 한국 출신 인력의 면면을 소개했다.

7일 이모 헝다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장(왼쪽)이 쉬 자인 헝다 회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 헝다그룹
7일 이모 헝다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장(왼쪽)이 쉬 자인 헝다 회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 헝다그룹
이 연구원장은 20년 이상 SK에서 근무하며 SK이노베이션 배터리연구소장까지 거쳤던 인사다. 그는 2019년에 헝다로 이직했다. 부원장은 김 모 전 SK이노베이션 배터리기술 총괄, BMS개발연구센터장은 김 모 전 SK이노베이션 수석 연구개발전문가가 담당한다. SK이노베이션 출신이 연구원의 요직을 대거 차지했다.

원장 보조는 LG화학(現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출신 2명이 맡는다. 설비개발연구센터 연구개발 부총책도 LG화학 출신의 몫이다. 삼성SDI 출신 인력도 각각 배터리 소재 연구개발센터 연구개발 총책, 선행기술개발연구센터 연구개발 부총책 자리를 차지했다.

헝다는 2019년 초 배터리 기업을 설립하며 한국, 일본, 독일, 스웨덴 등 9개국 출신 경력자를 우대하는 조건으로 8000명쯤의 글로벌 인재를 채용했다. 이중 800명의 R&D 인력 상당수는 K배터리 3사 출신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배터리 핵심인력의 잦은 이직 원인은 결국 ‘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국 CATL은 2019년 7월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며, 한국 인재를 대상으로 기존 연봉의 3∼4배를 제시한 바 있다. 헝다 역시 비슷한 조건으로 한국 인력 빼가기에 나섰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K배터리 3사의 R&D 투자비용 합계는 연간 2조원이 넘는다. 3사는 이를 토대로 세계 시장에서 손꼽히는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작 그만한 성과를 이룬 인력에 대한 처우는 글로벌 경쟁사 대비 열악한 현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 중인 직원 모습/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 중인 직원 모습/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전지부문 직원의 평균연봉은 7800만원(이하 2019년 말 남직원 기준)이다. 중국 기업이 제시하는 급여 대비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SDI도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에너지 부문 직원 평균연봉도 7800만원에 불과하다. LG화학과 삼성SDI의 평균연봉은 2017년 말 대비 각각 200만원, 400만원 줄었다. 채용 증가로 인력이 1200~2000명 늘어난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아쉬운 수치다.

SK이노베이션은 그나마 경쟁사 대비 나은 처우를 해준다. 2019년 말 평균연봉은 1억2600만원으로 2017년(1억2100만원) 대비 500만원 늘었다.

근속연수로 봐도 LG화학은 8년으로 경쟁사 대비 2~4년 적다. 수많은 인력이 중국·유럽 등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고, 2017년 이후 76명의 직원이 SK이노베이션으로 옮긴 것이 반영된 수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침해 소송이 핵심인력의 해외 유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동종업계로 이직이 사실상 막히자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으로 향하는 인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소송 여파로 당분간 LG에너지솔루션 출신 직원을 뽑지 않는 방침을 정했다"며 "삼성SDI 역시 비슷한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지만 핵심인력의 지속 유출은 국내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으로 향하는 인력을 어떻게 막을까에만 집중하기 보다 개선된 처우 및 근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방식은 핵심인력의 중국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며 "이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기업의 유인책과 정부의 R&D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