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의 대표작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그 한국 리그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악재가 겹쳤다.

김대호 DRX 감독(前 그리핀 감독)이 소속 선수 폭행건으로 징계를 받았다. LCK 팬덤은 비판과 옹호 두 입장으로 찢어져 다투고 있다. ‘해외 이용자가 승부를 조작하려 LCK 선수의 솔로 랭크에서 고의로 게임을 망친다(트롤링)’는 소문도 사실로 밝혀졌다.

김대호 DRX 감독 / DRX
김대호 DRX 감독 / DRX
공정위, ‘폭행 혐의’ 김대호 DRX 감독에 자격 정지 5개월 처분
DRX는 물론 출범 앞둔 LCK 프랜차이즈에 악재될 수도

e스포츠공정위원회는 14일, 진행 중인 재판과는 관계없이 김대호 감독에게 자격정지 5개월 징계를 내린다고 밝혔다. 김대호 감독은 e스포츠 업계에 만연했던 불공정 계약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그리핀 사건’의 도화선이 됐던 인물이다.

그는 2019년 9월, 롤드컵 대회 참가를 2주 앞두고 해고된 이후 개인 방송에서 조규남 前 그리핀 대표가 거액의 이적료를 노리고 ‘카나비’ 서진혁 선수를 ‘템퍼링을 했다’는 구실로 협박해 5년 전속 계약이라는 형편없는 조건으로 중국 구단에 이적시키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김 감독도 이 과정에서 법정싸움에 휘말렸다. 2019년 12월에는 김 감독의 폭로 당시 ‘저격’ 당했던 ‘소드’ 선수가 김 감독을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라이엇게임즈도 최성원 선수 등 그리핀 선수들에게 폭력을 사용했는지 사실을 밝혀 달라’며 김 감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에 징계를 결정한 공정위는 ‘그리핀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20년 2월 출범한 조직이다. 법조계, 스포츠계, 학계, 선수협회, 산업계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됐다. ‘카나비’ 선수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인물도 다수 포진했다.

공정위는 형사재판과 별개로 규정·절차에 따라 녹음파일, 영상 등 자료나 징계 혐의자, 피해자의 출석 진술 등을 바탕으로 따로 조사한 뒤 징계를 결정했다.

판결 당일 저녁, 김대호 감독은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개인방송을 진행하면서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당시 현장에서 내 피드백을 폭력으로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소드 선수 본인도 당시 자신이 성적을 내지 못해 팀에 피해 입히는 상황을 미안해했지, 그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14일, 개인 방송에서 심경을 밝히는 김대호 감독 / 트위치
14일, 개인 방송에서 심경을 밝히는 김대호 감독 / 트위치
LCK 팬덤은 양분돼 다투는 모양새다. 일부 팬은 김대호 감독이 받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징계 철회를 요구한다. 다른 일부는 김대호 감독을 옹호하는 팬을 ‘대깨맥(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를 지칭하는 ‘대깨문’과 김대호 감독의 닉네임 ‘씨맥’을 합성)이라고 부르며 징계 내용은 합당하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다툼 과정에서 소드나 김대호 감독에 대한 인신공격도 다수 나와 ‘2차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징계 사실을 밝히면서 "e스포츠 팀 내에서의 폭행과 폭언은 팀 성적, 선수 발전 등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피해자가 폭행, 폭언 사실을 밝힘으로써 2차 피해를 받아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DRX 구단으로서는 이번 징계가 특히 뼈아프게 느껴질 수 있다. DRX는 최근 '표식' 홍창현 선수 외 주전 선수 4명과 계약을 종료했다. 이 탓에 팀을 갈아엎을 정도의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인데, 김대호 감독까지 자격을 일시적으로 잃어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잡음은 2021년 프랜차이즈 출범을 목표로 라이엇게임즈가 야심차게 준비하는 LCK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DRX는 LCK 프랜차이즈 참여 기업이다.

DRX 한 관계자는 "징계는 이미 확정된 상태로, 대상자인 감독 외에는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로스터 등록이 얼마 안남았다. 케스파컵은 15일까지였고, LCK도 9일 정도 남은 탓에 선수단을 운영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찾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LCK 팬 사이에서 떠돌던 ‘해외發 고의 트롤링’ 사실로 밝혀져
e스포츠 업계 "라이엇게임즈 대처, 매우 빠른 편"
LCK 팬 사이에서 떠돌던 ‘중국 베팅 사이트’의 트롤링 소문도 사실로 밝혀졌다. 라이엇게임즈는 14일 공지에서 "일부 해외 이용자가 중국 불법 베팅 사이트와 연계해 LCK 선수의 랭크 게임 결과에 고의적으로 개입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 게임 계정을 도용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공지했다.

중국 베팅 사이트에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 등 유명 선수의 솔로 랭크 경기를 두고 돈을 걸기 시작하자, 해외 이용자가 최상위급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 계정을 도용해서 일부러 게임을 망치는 방법(트롤링)으로 승부를 조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실력을 유지하고, 개인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는 LCK 소속 선수는 물론, 함께 게임하거나 이를 지켜보는 팬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 개인방송 중 도유(중국 라이브스트리밍 사이트)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용자가 게임을 탈주하는 모습 / 유튜브
‘페이커’ 이상혁 선수 개인방송 중 도유(중국 라이브스트리밍 사이트)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용자가 게임을 탈주하는 모습 / 유튜브
다행히 라이엇게임즈는 문제를 파악한 후 이러한 고의 트롤링 행위를 엄격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8일 LCK 선수와 랭크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등급이 높은 계정 1만개를 우선 검수해 도용 의심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9일에는 핫라인을 개설해 LCK 각 구단이 의심 정황 포착 시 곧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해외 이용자가 LoL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VPN을 활용해야 한다. 이 탓에 높아진 핑(응답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인가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된다. 라이엇게임즈는 14일 이 프로그램을 게임 시작 3분 안에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차단하는 솔루션을 도입했다.

e스포츠업계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선수끼리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개인 시간에 계속 게임을 즐기는데, 이 시간에 정상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없다면 보는 사람도, 게임 이용자도, 프로 선수에게도 모두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를 아는지 지난주 쯤에 문제가 처음 제기된 이후 라이엇게임즈가 매우 빠른 속도로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