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끝을 향해 가는 듯 해서 기쁩니다. 백신 접종으로 내 역할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은 영국 80대 부부의 말이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세계가 화이자·모더나 등 백신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 후 접종에 나선다. 알레르기 증세를 비롯한 부작용 사례도 보고되지만, 세계는 곧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언감생심이다. 백신 접종은 커녕 확보에도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국이 접종에 나서는 동안 우리나라는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게 됐다.

백신 확보에 뒤처지면서 정부를 향한 비난이 거세지자 보건당국은 ‘4400만명분’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막상 정식 계약을 체결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1000만명분 뿐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과는 공급 확약서 등을 통해 물량만을 확정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은 구매를 확약해 계약서를 검토하는 단계"라며 "올해 연말까지 두 개 이상의 백신 계약 완료가 목표다"라고 말했다. 실질 계약이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그럴듯한 수치를 제시해 ‘국민 달래기’에 나선 꼴이다.

세계 정부가 몇 달 전부터 백신 입도선매에 나서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최근 정부 행보를 보면 답이 보인다.

코로나19 확진자가 600명을 웃도는 사이 정부는 K방역 홍보에 1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여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전 부처에 ‘코로나 진단 시약 수출 성과 등 K방역 우수성을 홍보해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 백신 확보에 달려 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K방역 국뽕’에 취해 관련 홍보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연일 나오는 이유다.

K방역은 국민과 기업, 정부가 힘을 합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백신은 다르다. 물량 확보는 국가 차원의 과제다. 백신의 부작용을 앞세워 물량 확보에 늑장을 부리면서도 국민에게 힘을 합쳐달라고 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다. 책임질 일을 미루고 국민에게 호소할수록 코로나19 종식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확산세를 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여전히 백신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K방역은 과거의 성공 사례로 덮어두고 이제는 과감한 선구매를 통해 현재 닥친 위기를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선제적인 방역대책을 세우길 바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