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CBDC, 지급준비금·결제성 예금과 별도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방식의 화폐)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 정부도 올해 본격적인 사업에 발을 디뎠다. CBDC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 마련과 국민 편익 중심의 서비스 제공 등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17일 조선미디어그룹 기술 전문매체 IT조선은 핀테크·블록체인 콘퍼런스 ‘FinD 2020’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FinD 2020은 금융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데이터와 플랫폼을 주제로 총 4개 세션으로 진행됐다.

이날 열린 세 번째 세션 주제는 최근 주목받는 CBDC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좌장의 진행으로 윤하리 신한은행 디지털 R&D센터 블록체인랩장, 한대훈 SK증권 연구원, 김의석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류창보 NH농협은행 디지털연구개발센터 파트장,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해 각국의 CBDC 사례와 한국은행의 CBDC 과제 등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최화인 에반젤리스트, 김의석 교수, 한대훈 연구원, 윤하리 블록체인랩장, 류창보 파트장, 한서희 변호사가 CBDC 토론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 IT조선
왼쪽부터 최화인 에반젤리스트, 김의석 교수, 한대훈 연구원, 윤하리 블록체인랩장, 류창보 파트장, 한서희 변호사가 CBDC 토론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 IT조선
최근 디지털 환경이 확산하면서 법정 통화 역시 종이에서 디지털로 변모하고 있다. 새로운 화폐 개념이 떠오르자 관련 기술과 영향력을 높이려는 국가 간 경쟁이 점차 치열해진다. 중국과 유럽, 중동 등에서 잇따라 CBDC 관련 행보를 보인다.

이 가운데 주목을 받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CBDC인 디지털 위안화를 선보인 후 선전과 슝안, 쑤저우, 청두 등 여러 도시에서 시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CBDC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한대훈 연구원은 "중국은 CBDC를 통해 해외 자본 유출이라든지 개인 간 거래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위안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또 미·중 패권경쟁에서 달러를 중심으로 기축통화국 지위를 갖던 미국에 대응할 새로운 금융 수단으로 CBDC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중국과 달리 초기 CBDC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페이스북 등 민간 기업에서 암호화폐를 내놓고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로 대응하자 점차 디지털 달러에 관심을 둔다. 기축통화국 지위를 CBDC로 이어가면서 중앙은행이 민간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CBCD 본격화 앞서 법적 제도 마련해야

이같은 상황에 한국도 CBDC 사업을 바라본다. 한국은행은 2021년 CBDC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금융 업계는 한국은행이 CBDC를 직접 운영할지, 시중은행이나 플랫폼 기업과 함께 간접 운영을 진행할지에 주목한다.

윤하리 블록체인랩장은 "직접 운영 방식이라면 기존 시중은행에는 큰 위기로 은행 영업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신한은행은 최근 LG CNS(IT 서비스 기업)와 CBDC 대응 사업을 위한 기술검증(PoC)을 진행하는 등 나름의 대응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창보 파트장은 "한국은행 담당자라면 카카오나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와 간접 운영을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며 "농협도 한국은행의 CBDC 운영에 따른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운영 방식이든 한국은행의 CBDC 사업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법적 제도 마련이 시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CBDC 운영뿐 아니라 파생하는 여러 문제를 개선하도록 관련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서희 변호사는 "만약 직접 운영 방식으로 한다면 한국은행법상 민간과 거래가 불가능한 점을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간접 운영 때에도 어떤 업무를 위탁할지 위임 여부 등을 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전자거래금융법 등이 개정돼야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 통화 흐름은 경계…정부·플랫폼 기업 협력 모델이 최상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 주도의 CBDC를 진행하면서 민간 기반의 암호화폐는 규제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민간 주도의 통화 흐름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가 간 CBDC 경쟁에서는 정부가 무작정 암호화폐를 규제하기보다는 민간과 함께 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대훈 연구원은 "과거 환율 전쟁은 국가 간 싸움으로 끝났지만 앞으로는 판이 커지면서 국가와 플랫폼(민간)이 함께 대응하게 된다"며 "중국은 인민은행이 CBDC를 발행하지만 첨병 역할은 알리바바가 맡는 등 국가와 플랫폼 기업이 함께 디지털 생태계 명운을 걸고 싸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CBDC를 다루면서 생기는 개인정보 이슈도 해결 과제다. 중앙에서 각종 금융 정보와 거래 내역 등을 관리하면서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하리 블록체인랩장은 이와 관련해 "만약 간접 운영 방식이라면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이 하나의 블록으로 묶이고 사용자는 또 다른 체인으로 묶여 한국은행에 모든 정보를 보관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본다"며 "기술적으로 회피 방법이 있기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CBDC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CBDC 사업에서 성공 열쇠를 쥐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각국이 뛰어든다고 해서 무작정 뛰어들기보다는 목적성 있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의석 교수는 "CBDC 하는 국가들은 국가마다 목표가 분명하기에 한국도 국민 편익 증진이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며 "CBDC 도입 시 통화 정책에 변수가 급증할 수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금융권이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so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