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일자리 우려' 속내 드러나는 ITC의 LG·SK 판결 지연

이광영 기자
입력 2020.12.18 06:00
메디톡스·대웅제약 판결, 예상보다 빨라
美 하원 서한 등 경제 우려 반영 해석
양사 합의 위한 ‘시간 벌기’ 목적 분석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6일(이하 현지시각)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벌인 보톡스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최종 판결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 간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최종판결을 세 차례 미룬 반면 ‘보톡스 균주 분쟁’의 결론은 비교적 빨리 나왔다. LG와 SK 간 소송이 유독 장기화하는 배경을 놓고 배터리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LG·SK와 업종은 다르지만, 국내 기업이 미국 ITC에서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벌인다는 점에서 유사한 사례로 자주 회자됐다.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ITC의 최종판결이 잇따라 연기되는 비슷한 흐름도 있었다. 16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최종판결이 연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이유도 LG와 SK 간 최종판결이 새해 2월 10일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ITC는 16일 예상과 달리 메디톡스의 승소를 최종 확정했다. 애초 최종판결이 더 빨리 잡혀있던 배터리 업계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할만한 결정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ITC는 최초 10월 5일로 예정한 배터리 소송 판결일을 10월 26일→12월 10일→2021년 2월 10일로 잇따라 변경했다. 최초 선고일 대비 4개월 늦어진 셈이다. 반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최종판결은 11월 6일에서 11월 19일로 한차례 연기된 뒤 40일만인 12월 16일 결론이 나왔다.

두 가지 소송의 경우 같은 영업비밀침해를 다루지만, 기간은 3개월쯤 시간차를 보인다. SK와 LG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지연이라기 보다 정치적 이슈가 주요 이유 아니냐고 추론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는 ITC의 판결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톡스 균주 분쟁과 달리 LG와 SK의 영업비밀침해 소송은 미국 현지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2월 ITC가 내린 SK의 조기 패소 결정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이 회사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2조9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는 SK의 미국 내 사업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미 하원의원 3명이 최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에 서한을 보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들은 서한에서 "ITC가 한 회사에 부정적인 판결을 내면 미국 경제와 공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양사 분쟁에 대해 실행 가능하고 우호적이며 책임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길 정중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SK의 미 조지아주 투자는 총 26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와 함께 폭스바겐·포드의 전기차 생산과 밀접 연관돼있다. LG 역시 미 오하이오주에 GM의 합작으로 연간 30GWh 규모의 생산시설을 확보할 계획으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ITC가 최종판결을 2개월이나 미룬 속내를 두고 양사 합의를 종용한 정치적 판단으로 해석한다. 보톡스 균주 분쟁의 결론이 더 일찍나오면서 이같은 추론은 더욱 힘을 받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소송은 보톡스 분쟁과 달리 미국의 직접적인 이익 문제가 연관돼있다"며 "ITC는 어느 한쪽이라도 미국 내 사업에서 피해를 입지 않길 바라며, 양사가 합의에 이르도록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와 보톡스 관련 판결은 다음 단계인 대통령의 거부권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 대통령은 ITC 최종판결이 나온 60일 이내 승인 또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보톡스 영업비밀침해 소송 판결의 경우 임기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배터리 판결은 새해 1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당선인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맞춰 미국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투자를 유치하려면 배터리 공급사에 대한 의존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ITC가 SK의 조기패소를 유지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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